고대부터 전해지는 “장비빨”이란 비법이 있습니다
세차장 사장님의 참견이 너무 무서웠으므로 가기 전에 세차장 이용법을 알아둬야 했다. 유튜브에 검색해보니 손세차 셀프세차 디테일링 등으로 수많은 영상이 나왔다.
솔직히 이렇게 생각했다. ‘간단하네, 역사 내가 보고 기억하는 것 이상은 없군.’ 이 정도면 그냥 가서 이 세차장의 이용방법만 알려주고 한 번 해볼 수 있게 두면 되는데,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기계식 자동 세차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손세차를 잘 할 줄 알게 되었고, 세차장 이용법도 잘 알게 됐고, 줄곧 손세차만 했다. 그리고 처음 전화했던, 사장님이 전화를 끊지 않던 바로 그 세차장에만 갔다. 살던 동네 안에는 그곳 하나뿐이기도 했지만 사장님도 시설도 좋은 곳이었다.
사장님은 단순히 ‘세차장 첫 방문자’를 잘 도와주려는 마음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는 사장님의 이 짐작이 맞기도 했고, 나에게 도움도 되었다. 그러나 남성이 전화했다면, 이 사람이 손세차를 처음 하는 사람이라고부터 생각하거나(나는 처음이라는 말을 먼저 꺼내지 않았다……), 자신이 도와주지 않으면 세차를 할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하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스스로 ‘여성’ 운전자라는 것 때문에 겁을 많이 내고 있었고, 방어적이었다.
겁먹은 손세차 초심자였던 나는 전화를 한 날로부터 약 삼 주가 지나서야 세차장에 방문했다. 한창 꽃가루와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던 봄철이라 흰색이었던 내 차는 노랗게… 노랗다 못해 검은 땟국이 흐르는 상태가 됐다. 그 지경이 되는데도 삼 주동안 겁내고 무서워하느라 그런 건 아니다(부끄럽지 않다!!). 유튜브를 뒤져보고 차량 카페를 검색하며 세차도구를 마련했다. 걸레 걸레 걸레면 걸레지 타월이며 걸레에도 종류가 있었고 가격도 천차만별이었다. 그것들을 찾아보고 고르고 주문하고-또 그 사이사이 ‘구경’을 하느라고 시간이 엄청 갔다. 아빠와 오빠는 그냥 가까운 대형마트나 다이소에서 싼 걸 아무거나 사라고 했지만, 왠지 모를 장비 욕심이 생겼던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욕심+ 괜찮은 제품을 들고 가면 세차장 사장님이 아 이 사람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여성‘ 운전자는 아니네?라고 생각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거기다 또 좀 유별난 내 성격에, 기왕 장비를 갖출 거면 제대로 하자 싶었고, 어떤 제품은 회원도 아닌데 코스트코에서 대량으로만 파는 걸 꼭 쓰고 싶어지자 당근으로 한 개를 구하기까지 했다(ㅋㅋ).
다들 좋다고 하는 제품을 쓰면 일단 기분이 좋다. 아무것도 신경 안 쓰이고 당당해진다. 비싼 화장품 쓰는 느낌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싼 제품을 쓴다고 다를 건 하나도-는 아니겠지만… 느껴질 만큼은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다른 제품을 안 써봐서 모르겠다…
그때 내가 샀던 것들이다: 니트릴 장갑. 드라잉 타월. 글라스 타월. 극세 타월. 물왁스. 유리세정제(발수와 친수 각각). 워시 미트. 차량용 먼지떨이. 실내 세정제.
이 중에 나 쓰라고 아빠가 트렁크에 넣어주셨는데 “구매”에 정신이 팔려 또 샀다가 당근에 내다 판 것도 있다(휴.. 팔려서 다행이다).
사고 싶었는데 안 산 것도 있다: 밀크박스, 차량용 실내 청소기, 양동이(플라스틱 바스켓). 지금은 시간이 지나서 기억 못 하는 것도 있을지 모르겠다.
좀 우스운데, 실제로 처음 세차장 가서 미트 꺼내 미트질하고 타월 이것저것 꺼내서 쓸 때, 또 세정제도 종류별로 꺼내서 순서대로 쓰니까 사장님이 어, 이거 OOO 꺼네 이건 ㅁㅁㅁ꺼네, 잘 사셨네요, 더 살 것도 없네요, 하셔서 다소 안심했고 기분도 조금 좋았더랬다.(어디서 무슨브랜드 얼마에 뭐샀는지- 물어보신다면 기억나는대로 답해드리겠어요) 틈틈이 나에게 없는 걸 찾으시려는 거였을지도 모른다. 끝까지 ‘유막제거제’를 들고나와 이걸 사야한다고 하셨으니까. 하핳… 사서 다 잘 썼지만, 시간이 나면서 그 모든 게 다 필요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