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기계청소가 꿈은 사치라고 생각했던 내 삶에 부와 여유를
꿈 꾸는건 자유(free)지만, 무료(free)는 아니니까.
스무 살부터 알바지옥이 시작되었다.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학교 가는 교통비, 통신비, 식비를 마련할 방법이 없었다. 2학년이 되었을 때는 학비도 직접 내야했다. 집이 가난해서라기 보다는 가난한 집에서 힘들게 마련해준 학비를 내가 몽땅 날렸기 때문이다.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이 심했고 공황장애는 초기 증상 정도 발견되었다. 휴학계를 낼 생각조차 하지 못할 만큼 정신을 놓고있었다. 그래서 2학년 1학기 학비는 모두 날린 채 1년을 쉬었다. 재수를 하면 큰일이 나는 것 처럼 고등학교 졸업에 맞춰 대학에 왔으면서도 1년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흘려 보내다니 그럼 재수하는 것을 겁낼 필요도 없었을 텐데.
스물 하나, 학교에 가는 척 하기위해 엄마가 출근할 때 준비하는 척 하다가 엄마가 출근하고 나면 다시 잠에 들었다. 잠이 오지 않아도 꾸역꾸역 잤다. 해가 뜨는 것이 죽음을 앞둔 것 만큼이나 싫었다. 계속 잠에 취해 자다가 자다가 일어나지 않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울감이 집어삼킨 인간이 얼마나 무기력한지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러다가 학교에 가지 않을거면 돈이라도 모아두자 싶어 다시 아르바이트 공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집 근처에 오픈을 앞두고 있던 카페에서 일하게 되었다. 카페 아르바이트는 처음이어서 음료의 레시피를 외우는 것은 여간 어색한 일이 아니었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카페 일은 더욱 섬세함을 요구한다. 1ml 1oz 같은 작은 단위가 만들어내는 큰 차이에 몰두하다 보면 급격히 피로가 몰려온다. 바쁜 시간에는 바빠서 힘들었고 바쁘지 않은 시간에는 일을 만들어서 하느라 힘들었다. 여기가 아니면 갈 곳이 없으니 나에게는 너무 소중한 일터였다. 조용한 시간대에는 창고 정리를 했고 시키지 않아도 수시로 2층에 올라가 테이블을 닦았다. 커피를 만드는 데는 서툴렀지만 열심히 하는 모습에 많이 예쁨을 받았고 자연스럽게 커피를 1부터 10까지 정석대로 배우며 점점 카페 일과 사랑에 빠졌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경제적인 이윤이 생긴다는 경험은 난생 처음이었다.
힘든 순간도 물론 많았다. 밤 12시 30분에 마감을 하고 매일 아이스크림 기계를 청소하는 것은 체력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렇게 아이스크림 기계를 청소하고 조립까지 할 줄 아는데 이 능력은 누가 알아봐 줄까? 만약에 호주에 가서 아이스크림 기계 청소를 할 줄 안다고 하면 일을 더 쉽게 구할 수 있지 않을까? 별별 잡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스물 한 살에 했던 이 잡생각은 현실이 되어 스물 여덟, 호주 한 카페에서 나는 유일하게 아이스크림 기계를 청소할 줄 아는 직원이 되어있었다. ‘아사이 볼’ 이라는 브라질식 스무디가 주력 메뉴였다. 새벽 6시 막 오픈을 한 카페에 아사이볼 주문이 족히 열 개 씩은 들어올 만큼 바쁜 카페였다. 하지만 충격이었던 것은 아무도 아이스크림 기계를 청소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매일 기계를 해부하고 수도에 호스까지 연결해 깨끗이 청소하는 것이 카페 마감의 주요 업무였기 때문에 일주일, 한 달이 되어도 청소하는 것을 보지 못해 내가 다 찝찝했다. 나에게는 익숙한 아이스크림 기계라 해부하고 조립하는 것은 식은죽 먹기였고 직원이 넉넉하고 시간이 여유로운 틈을 타 나는 재빨리 아이스크림 기계를 청소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아이스크림 기계 청소는 내 몫이 되었다. 그러다가 카페를 마감하는 시간대까지 자연스럽게 내 몫이 되었다.
호주는 시급이 높다. 2023년 OECD 국가 중 2위이다. 이 높은 시급에 주말 수당이나 초과 근무 수당이 붙으면 급여 명세서를 볼 때마다 미소를 감출 수 없을 것이다. 해가 뜨기 전에 출근을 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첫 커피를 책임지는 일. 저마다의 까다로운 커피 주문을 꼼꼼하게 입력하고 확실하게 만들어 내는 일. 어느 새 손님의 얼굴과 이름과 커피 메뉴까지 한꺼번에 떠올라 나 스스로 놀라는 일. 여전히 해가 떠 있을 때 퇴근을 하고 옷에 배인 커피향과 손톱 밑 커피 찌꺼기들을 거둬내며 하루를 마무리 하는 일. 호주에서 바리스타로 먹고 산다는 건 꽤 괜찮은 삶이다. 분명 나는 달라지지 않았는데 똑같이 아이스크림 기계를 청소하고 쉴 새 없이 어딘가를 닦아대며 카페 문을 닫는 고된 노동에 찌뿌둥한 이 느낌마저 같은데 통장에 찍히는 금액의 차이를 보면 묘한 성취감에 사로잡힌다. 기본 급여도 만족스럽지만 카페 마감은 초과수당이 꽤 짭짤했다. 시급이 2배인 공휴일 하루에 찍힌 노동의 대가가 내 카메라 값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 귀찮은 아이스크림 기계 청소 어디에 써먹냐며 툴툴댔던 스물 한 살의 내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달콤한 주급의 맛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능동적인 선택을 통해 몸 값을 올린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물론 높은 물가와 생활비를 고려하면 한국과 비슷하겠지만 생활비를 아낄 수 있는 방법이 충분히 있으니 비슷한 노동을 하면서 어느 정도의 금전적 여유도 생기고, 금전적 여유가 생기니 자연스럽게 꿈이 떠오른다. 잊고 살던 하고싶었던 일들이 은연중에 떠오른다. 와인바를 차리고 싶었고 파티를 할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 사장을 꿈꿨다. 2015년에 빼곡히 적어 둔 아이디어들은 2023년에 이미 누군가가 실행하기 시작했다. 아이디어를 빼앗긴 것 같아 아쉬움은 전혀 없고 오히려 기뻤다. 정당한 노동을 통해 돈을 벌고 아주 조금 주머니사정이 나아졌을 뿐인데 꽤 오래 생각하지 않던 사업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그 행위 자체가 나에게는 중요했다. 꿈을 꾸는 건 자유(free)라지만, 꿈을 꾸는 것이 무료(free)는 아니다. 돈이 없으면 꿈을 잊게 되고 저 만치 내버려두게 된다. 먹고 살다 보면 내가 정말 하고싶은 일들은 비현실적이고 터무니 없는 것들이 되어버린다. 그런 의미에서 순간 순간 ‘내가 이 것이 하고싶었는데’ 떠오른다는 것은 내 삶이 아주 조금은 나아졌음을 뜻한다. 엄청난 돈을 벌어 부를 축적하고 부자가 되어 돈을 걱정하지 않는 삶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적당한 돈이 있어 문득 하고싶은 것이 생겼을 때 주저하지 않을 정도의 경제적 심적 여유를 갖추고 싶을 뿐이다. 호주라는 나라가 유토피아는 아니었다. 분명 지치고 힘들 때도 많았지만 찰나라 할지라도 내게 희망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성실하게 살면 꿈이라는 걸 꿀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농장에서 사과를 딸 때에도, 커피를 만들 때에도, 음식을 나르고 테이블을 닦으면서도, 일 하나를 끝내고 다음 일터로 가며 코피를 막아내던 그 순간에도 꿈 꾸는 것을 멈추지 않게 해주었다. 결론은 스물 한 살에 배워 놓은 아이스크림 기계청소가 꿈은 사치라고 생각했던 내 삶에 부와 여유를 가져다 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