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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김민솔 Sep 19. 2024

초기정착

새로운 내 모습을 끊임없이 발견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는 과정

2022년 2월 22일, 2라는 숫자가 빼곡한 오늘 싱가폴을 경유해 호주 멜버른으로 떠난다. 


설 연휴였다. 인천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안에서 급하게 휴대폰을 정지하다 갑자기 울리는 전화를 다급히 받았다. 할머니였다. 반가울 리 없다. 부모님의 이혼이 달갑지 않은 할머니는 내게 전화해 감정을 쏟아냈고 예민한 성격 탓에 날카로운 음성과 언어들이 고스란히 내 가슴속에 담겨있다. 할머니는 하필 설 당일에 떠나는 것에 대해 의문과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설 당일에 비행기표가 비교적 저렴했고 굳이 이런 저런 질문공세에 휘말리지 않아도 되니 최적이었다. 물론 비행기표가 저렴하다고만 변명하였다. 


역병이 진행중인 관계로 출국에 필요한 서류만 한가득이었다. 백신 접종 증명을 포함한 여러가지 종잇장들을 보여주고 티켓을 거머쥐었다. 오랜만에 만져보는 비행기 티켓이다. 약 2년만에 드디어 비행기에 올랐다.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나는 어디로 가는걸까? 내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까? 


장기간 해외로 떠났던 것은 2017년도에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갔던 것이 전부였다. 이후로도 일주일씩 체류했던 학교 프로그램을 제외하면 1년이 될지 2년이 될지 3년이 될지 모른 채 먼저 비행기에 오른 건 처음이었다. 이런 기분은 난생 처음이었다. 교환학생을 떠났을 경우는 완전히 다르다. 작게는 학교 크게는 국가에 소속되어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면 기댈 곳이 있다는 소리다. 내가 배정된 학교가 있고 기숙사가 있으며 막연한 곳에서 우리의 정착을 도와줄 중국학생들도 있었다. 하지만 워킹 홀리데이는 달랐다. 어떠한 소속도 없는 곳에서 완전히 새로운 시작이었다.


나와 그리고 내 짐 가방 몇 개를 제외하면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점점 가까워진다. 이제 이 비행기에서 내리면 나는 정말 혼자가 된다. 내가 살 곳도, 돈을 벌 곳도 스스로 찾아야 하며 나를 먹이고 입혀야 한다. 스물 일곱이 되도록 혼자 살아본 적 없던 내가 나를 먹여 살려야한다니 앞이 깜깜하다. 친구들의 편지를 보며 눈물을 뚝뚝 흘리다가 주는 밥을 먹고 영화 몇 편을 보니 호주 멜버른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내가 묵을 호텔로 가기 위해 택시 기사와 가격 협상을 하다가 문득 내가 영어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음이 믿기지 않는다. 


호텔에 도착해 짐을 두고 가장 예쁜 옷으로 갈아입었다. 니트 소재의 민소매 원피스. 혹시나 추울까봐 얇은 외투를 챙겼다. 계절은 한국과 반대였지만 약간은 쌀쌀한 바람이 코 끝을 스쳤다. 이게 추운건지 더운건지 구분이 안가는 오묘한 날씨였다. 바람이 세차게 불더니 갑작스럽게 추위가 느껴졌다. 결국은 잠깐 나갔다가 다시 호텔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었다. 멜버른 날씨는 하루에 4계절이 다 있다더니 그 말에 일리가 있구나. 멜버른에서의 일정은 하루가 전부였다. 세컨비자 취득을 위해 농장은 이미 페이스북 그룹을 통해 알아봤다. 세컨비자라고 할 것 같으면 비교적 일손이 부족한 시티 외곽 지역에서 농장 혹은 공장 등에서 88일간의 근무일수를 채우면 1년 더 연장할 수 있는 제도이다. 1년은 부족할 것 같아 호주에 가자마자 농장부터 가기로 하고, 회사에서 운영하는 숙소가 있어 일과 집을 한번에 구한 셈이다. 한국에서 이력서를 메일로 보냈고 포장팀에 자리가 하나 있다며 합격통보를 받았다. 호주에서 급여를 받고 생활비를 쓸 카드는 이미 인터넷으로 신청을 한 상태라 수령만 하면 되기 때문에 멜버른 시티에 오래 머무를 필요는 없었다. 사실 시티에 더 오래 머물고 예쁜 것들을 많이 볼수록 농장생활이 지루해지지 않을까 싶어 내린 결단이었다. 하지만 세컨비자를 취득하고 멜버른시티까지 이사를 와서 농장이 그리워 다시 짐을 싸 돌아가버리는 결말 따위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렇듯 워킹홀리데이는 한치 앞도 예상할 수 없다. 나라는 사람을 A라고 하자, 그렇게 평생을 살아왔는데 새로운 환경에서 B인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더욱 재미있는 것이 워킹 홀리데이다. 


새로운 내 모습을 끊임없이 발견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는 과정,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인생의 경험치들이 앞으로 살아감에 있어서 무한한 도움을 준다. 2년의 호주 생활이 끝난 지금의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정도는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것이 내가 앞으로 하는 선택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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