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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김민솔 Sep 12. 2024

모두들 가슴에 워킹홀리데이 비자신청서 쯤은 품고살잖아

단언컨대 내 워킹 홀리데이는 그리 성공적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농장 가는 길을 촬영해 유튜브에 업로드했더니 3만뷰를 기록했다. 당시에는 유튜브에 호주 워킹홀리데이와 관련된 컨텐츠가 거의 없었던 것이 한 몫 했다. 호주는 역병 기간 국경을 꿋꿋히 닫고 있었고 내 비자가 승인됨과 동시에 국경을 열었기 때문에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간 셈이다. 운이 좋았다. 당시에는 부족한 정보 탓인지 호주에 들어오는 사람이 많이 없어서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호주 정부에서는 40만원 가까이 되는 비자 신청비를 돌려주면서 까지 국경을 활짝 열고 국제 일꾼들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다 보니 이런 기회에 딱 맞게 오게 되어 비자 신청비도 환급 받아버리고 비교적 수월하게 시작되었다. 아마도 이 시기에는 워킹 홀리데이가 불가능한 줄 알았는데 누군가가 전철을 타고 농장에 가는 미리보기 화면은 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끈 모양이었다. 그래서 채널 규모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워킹 홀리데이를 하는 동안 내 영상을 봤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정말 신기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왔다고 생각했는데 심적으로 편안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메시지를 보내 나를 응원했다. 그 당시 주변에도 워킹 홀리데이를 가는 사람이 많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스물 일곱이 되어갈 쯤에는 대부분 취업을 한 상태였고 커리어를 쌓아올리는 과정중에 있었기 때문에 워킹 홀리데이를 간다는건 무모한 도전에 가까웠다. 나는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도 모르고 꽤 많은 응원 메시지에 잠깐 심취할 뻔 했다. 나는 그렇게 대단한 경력을 쌓고 있던 것도 아니었고 하고싶으면 해야 하는 사람일 뿐이어서 큰 어려움 없이 결정을 했던 것이 누군가에게는 영감을 줄 수 있구나 생각했다. 그들의 몫까지 더 재미있게 의미있게 보내야하나 하는 부담감도 생겼다. 한마디로 내가 뭔가를 해야만 할 것 같았다. 나는 나처럼 누구나 가슴에 워킹홀리데이 비자신청서 쯤은 품고 사는 줄 알았다. 그렇지만 비자 작성 부터가 어려운 사람들이 있고 꿈을 꾸는 것 조차 어려운 사람들도 있다는걸 알게되었다. 그래서 이 기회를 더 소중하게 알차게 누려야했다. 이렇게 무턱대고 호주에 온다는 것이‘그래, 짐이 많은건 죄야, 난 전생의 죗값을 지금 치루는거야 모두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호주에 가야겠다는 결단을 하고 비자 신청, 신체 검사, 항공권을 구입해 떠나기까지 채 3개월도 걸리지 않았지만, 충동적인 결정을 잘 내리는 나조차도 많은 것을 포기해야했다. 늘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와 학비를 벌어야 했던 대학시절에도 워킹 홀리데이 비자 신청서를 가슴에 품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아직 어리니까 난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어 그리고 너무 힘들면 워킹홀리데이 가버리면 돼. 졸업 후 직장을 찾을 때에도 계속 되는 탈락 앞에서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면 되지 하는 가벼운 생각들이 나를 달래주었다. 사업을 시작하고 잘 풀리지 않을 때에도, 그토록 좋아했던 중국어를 쓰면서도 영어를 쓰는 나라에 가서 영어까지 잘 하게 되면 이렇게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되겠지 하는 생각들이 스쳐갔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는 건 나에게 있어서 확실한 도피처이자 비장의 카드와 같았다. 하지만 진짜 호주에 간다는 것은 더 이상 내가 도망칠 곳도 잠시나마 상상만으로 위안이 되었던 안식처도 모두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가슴에만 품고있던 워킹홀리데이 비자신청서라는 비장의 카드를 꺼냈을 때 이제는 현실이 되어있었다. 상상만으로 잠시 기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제 진짜 이 비장의 카드가 내 삶을 바꾸는 수단이 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호주는 내 상상만큼 사회적으로 완벽하고 평등하며 아름다운 자연에서 뛰노는 동물들, 평화롭고 안락한 유토피아는 아니었다. 2년이 지나 돌아온 지금 호주도 그저 사람 사는 곳이었다. 어쩌면 가슴에 비장의 카드를 품고 살았을 때가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나는 그저 호주에서 애매한 영어 실력을 가졌지만 그저 열심히 살아보려 발버둥치는 아시안 여성 노동자 1이었다. 많은 이들의 기대와 응원을 받으며 야심차게 시작한 호주 생활이었지만 내가 상상하고 추구했던 나의 호주 생활과 현실의 괴리는 그리 작지 않았다. 어쩌면 스스로가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필요 이상으로 낭만적이고 로망이 가득한 것으로 생각해왔을지도 모른다. 호주는 수많은 나라 중 하나일 뿐이고, 워킹 홀리데이는 비자의 종류 중의 하나일 뿐이다. 한국이 아닌 타국에서 워킹 홀리데이라는 1년 어치의 비자를 가지고 내가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차곡 차곡 쌓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계획일 것이다. 


호주로 떠나기 전에 함께 아르바이트 하던 친구에게서 1년간의 호주 워킹홀리데이 후기를 직접 전해들었다. 그 친구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늘 의존하는 성격이어서 호주에 다녀오고 독립적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목표는 단지 의존하는 성격을 고치는 것이어서 그 것 만으로도 굉장히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고 했다. 반면에 나는 가족으로 인한 아픔으로부터 도망도 쳐야했고, 영어도 아주 완벽하게 잘 하고싶었으며, 세계 각지의 친구도 사귀고, 돈도 많이 모아 장기 여행을 다녀도 잔고가 넉넉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목표를 하나로 정해도 이룰 수 있을지 모호한 판국에 어느 목표 하나 뚜렷하지 않고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모든 문제로부터 벗어나 인생을 송두리 째 바꿀 수 있는 장치로 여겼으니 단언컨대 내 워킹 홀리데이는 그리 성공적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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