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본인이 진정으로 좋아하고 푹 빠지는 일을 찾는다는 건 얼마나 행운인가? 그리고 그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면 그것은 더 큰 행운이다. 보통 직업은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이다. 그래서 좋아하지 않아도 그 직무에 소질이 있다면 이어나갈 수 있다. 그런데 그 생계 수단을 좋아하기까지 한다면 더할나위없이 행운이다.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은 정말 어렵다. 사람은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어떤 취미를 좋아하는지를 찾기까지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주변인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보면서 따라하기도 하고, 이것 저것 배워보거나 시도해보기도 하고, 혹은 알고리즘의 추천에 따라 우연히 해보기도 한다. 그렇게 시도해본 여러가지 중에서도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쓸 수 있을만큼 좋아해야하니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취미라고 하면 독서와 디제잉 정도가 있는데, 이 둘을 찾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독서는 처음부터 좋아했다기보다 우연히 시작한 독서모임의 파트너를 5년간 지속하게 되면서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어느 정도 알게 되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독서토론을 좋아하게 됐고 책을 좋아하게 됐다.
디제잉 역시 업무로 페스티벌 기획을 하고, 이태원 클럽을 다니기 시작하며 디제잉 존재에 대해서 알고, 우연히 선생님을 만나 배우게 되고 그러면서 기계를 사고. 하나씩 알게 되는 데까지 이것도 거의 5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한가지 분야에 푹 빠져서 취미라고 할 수 있을 데까지는 돈과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든다.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그렇기 때문에 직업을 좋아하게 되기까지는 정말 어렵다는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볍게 다가갈 수 있는 취미를 선택하는 것도 어려운데, 하물며 좋아하는 일을 발견하고 직업으로 삼을 수 있기 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학창시절에 배웠던 공부들과 대학에 선택한 전공, 그리고 대외활동. 그리고 이어지는 인턴시절과 첫 커리어. 그 와중에서도 내가 했던 직무들. 그것들이 이어지고 이어져 내가 그 중에서 가장 관심있고 스킬셋을 쌓은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된다. 스킬이 있지만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고, 좋아지게 됐는데 영 스킬이 없을 수도 있다. 혹은 일을 좋아한다는 감정은 보통 생각하지 않거나, 모른채 그저 사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나는 원래 문화예술분야의 콘텐츠 기획 직무를 하다가 조직문화 분야로 직무를 변경했다. 콘텐츠 기획 분야에서도 꽤 재미있게 일했고 성과를 낸 기억도 분명 있다. 그 성과가 매출로, 숫자로 확연하게 보여지면 뿌듯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콘텐츠라는게 참 빠르게 변화하고 매사 나는 트렌드에 민감하게 움직여야 했다. 분명 나는 그것보다는 좀 더 장기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고 진짜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 일을. 진심으로 직장 문화를 변화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이벤트를 기획하고 그 안에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것들, 민첩하게 상황을 읽는 스킬셋이 있으니 이걸 사내 문화로 연결지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절 다니던 독서모임에서도 '브랜딩'과 관련해 꽤 오랜 시간 공부를 했었는데, '인터널 브랜딩'이라는 개념이 정말 멋졌다. 결국 모든 기업과 일을, 사람으로부터 시작하고 직원으로부터 시작하는구나. 그것을 구성하는 것이 인터널 브랜딩이었다. 그 길로 나는 앞으로의 직무를 '기업문화'로 정하기로 결정한다.
그 결정을 한 후로는 다니던 회사의 퇴사를 결심하기까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방향성이 확실했기 때문에, 오히려 새로 이력서를 쓰는 마음으로 취업을 준비했는데 정말 운좋게 3개월만에 기업문화 관련된 직무로 변경이 가능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분야였지만, 그곳에서 쌓았던 스펙들이 connecting the dots으로 하나씩 연결되어 지금의 직무랑 연결되어 변경이 가능했다.
그리고 5년을 한국과 일본에서 기업문화 직무를 정말 신나게 했다. 기업문화에 의문을 갖는 직원을 붙잡고 몇시간씩 설득을 하기도 하고, 실제로 변화하는 모습들을 보며 보람있고 기뻤다. 회사=나 인 시절이었다. 배우는 모든 것들이 새로웠다. 일을 하면서 계속 스터디를 했는데, 독서모임의 연장선인 기분이 나서 어려웠지만 계속 스킬셋이 늘어나는 것 같아서 뿌듯했다. 그곳에서 배우던 것들을 실제로 적용해볼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기도 했다. 좋아하는 일을 점점 잘하게 되는 것이 신났었다. 업무 몰입도가 매우 높았던 시절이다.
일본으로 이주하게 되면서, 기회가 된다면 이 일을 글로벌리하게 경험해서 글로벌 인재가 되고 싶다는 희망도 물론 있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기업문화 일을 하면 할수록 소진되는 느낌이 있었다. 분명 한국에서보다 더 자유롭고 신나게 했지만, 결국 리더십단에서의 여러가지 리스크와 장애물들을 만났고, 회사의 매출과 성장 앞에서 기업문화는 우선순위에서 늘 그렇듯, 밀려나는 경우들이 종종 있었다. 그럴때마다 '이럴 때일수록 이게 제일 중요한 거에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안중요한 게 어디있는가. 나에겐 설득력도 없었고 자신감도 없었다. 그러면서 내가 업무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믿는 것들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고 나의 중심 또한 흔들렸다.
중심이 흔들리다보니 업무에 대한 애정도나 회사에 대한 로열티 역시 점점 줄어들었다. 좋은 동료들과 일하고 있었지만 낯선 해외 직장 생활에 매일 외국어 스트레스와 함께 번아웃이 오고 회사에 가는 길 발걸음이 너무너무너무 무거웠다. 매일 두통에 시달렸다. 결국 나는 잠시 쉬었다 가기로 결심하고 퇴사를 하게 됐다.
그렇게 다시 취업 전선에 뛰어들 때에는, 나에게 두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1) 눈에 보이는 매출이나 성과를 가져다줄 수 있는 한국어 활용 가능한 콘텐츠 기획자로 돌아가는지
2) 5년간 스페셜티를 쌓아온 영어나 일본어를 활용하는 기업문화 업무를 계속 지속할지
커리어를 이어나가는 문제도 있었지만, 일본이라는 해외 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1번에 대한 선택지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외라는 환경에서 '한국어'를 강점으로 가져가기 위해서는 전략적으로 1번이 취업이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1번을 지원할 때마다 서류 합격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가끔씩 2번을 지원하면 무조건 서류가 합격해서 면접까지 기회가 이어졌다.
결국 1번은 면접 기회도 오지 않았고, 2번 직무의 면접 준비와 과제 등을 하는 와중에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카페에서 2-3시간을 한번도 안쉬고 앉아서 면접 준비와 과제를 엄청 집중하고 신나서 준비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고개도 끄덕끄덕 하고 있었고 완전 몰입하고 있었다. 이게 얼마만이지? 갑자기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 나 이 일 좋아했었구나.' 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이게 얼마만인가 싶어서 몇 번이고 멍을 때리다가 또 슬쩍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은 참 어려운 것인데. 나는 겨우내 찾은 나의 좋아하는 일을, 여러 상황에 힘에 부쳐 슬쩍 손에서 놓아버리고 말았구나. 2번을 많이 좋아하면서도 1번이 더 돈이 되지 않을까, 이 나라에서 살아남으려면 필요하지 않을까. 여러 상황에 빗대어 2번을 슬쩍 외면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스스로 속이 많이 상했다.
여전히 1번이든 2번이든 선택지를 열어놓는 것에는 변함없다. 하지만 괜히 좋아할수록 더 밀어내는 아이처럼은 행동하지 말아야지. 더이상 내 머릿속으로 '나는 2번을 잘 못해' '내 미래를 생각해서 돈 되는 스킬셋 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게 나아.' 라는 생각을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지속할 수 있는 가능성마저 덮어버리지는 말아야지 싶었다.
나는 좋아하는 일을 찾아낸 행운자니까. 나는 이 일을 진심으로 좋아했던 사람이니까. 그 사실에 자부심을 갖자. 그걸로도 충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