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다. 최근 토끼굴 모임에서 각자 인사이트를 공유할 때에도 여러번 나왔던 이야기였다. 크리에이티브 창작을 할 때, 직장을 선택할 때, 또 살아가면서 하는 의사결정들에 있어 자기만의 기준과 가치를 갖고 결정하는 것은 중요하다. 내 인생을 사는 것이기 때문에 남이 정해주거나 가르쳐주는 말들뿐만으로는 절대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주변의 시선이나 말들, 사회에서 정해둔 틀 같은 것에 한하지 않고, 나 스스로 깊은 사유와 나를 잘 아는 사람들과의 긴 대화들을 통해 나만의 가치관과 철학을 갖고 무언가를 생산해내거나 선택하는 것. 이를 위해 평소에도 관심있는 분야나 생각할거리들을 가진 긴 호흡의 문장과 영상들을 자주 접하고, 나 스스로와의 대화를 위한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게 느껴진다.
책 <불변의 법칙>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장기적 사고가 우리가 소비하는 정보를 좌우한다. 뭔가를 읽을 때 이런 질문을 던져보라. 이 정보나 지식이 1년 뒤에도 내게 중요할까? 10년 뒤에는? 80년 뒤에는?"
깊은 사유를 위해서 내가 어떤 콘텐츠를 접할지 고민해봐야한다. 요즘은 주변에 너무나 쉽고 빠르게 나에게 다가오는 방해요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거 해봐야된대.', '여기는 꼭 먹어봐야한대.'등의 추천이 많다보니,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취향을 고려하기 전에 일단 사람들이 해봤다는 것들에 리뷰에 마음을 뺏겨 해보고 만다.
최근에 '등유난로'를 사는 결정을 할 때에도 그랬다. 요즘 캠핑을 시작했는데, 주변에 선배 캠퍼들이 없다보니 유투브에 의존하고 인터넷 검색에 의존했다. 일단 동계캠핑에는 무조건 필요하다는 말에 부랴부랴 캠핑 이틀 전 난로를 구매했지만, 어떤게 좋은 제품인지 충분히 고려할 시간이 없어서 사람들이 제일 많이 사는 비싼 등유난로를 일단 구입했다. 구입해보니 생각보다 부피가 커서 창고에 더 넣을 자리도 없고 이 큰 물품을 평소에 어떻게 보관해야하지? 라는 막연함이 앞을 가렸다. 나는 작은 물건도 집에 쓸모없는거면 사고싶어하지 않는 성향인데, 이걸 휙-하고 산 걸 보니 마음이 급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결론적으로는 캠핑에 안가져갔으면 우리는 자다가 얼어죽었을거라서 사길 잘했지만. 여전히 갖고 돌아오고보니 창고에 어디다가 두어야할지 막막하다. 이럴 때 인생에서 (1) 캠핑의 즐거움 (2) 평소 일상생활의 정돈됨 이 둘 중에 내가 (2) 이 우선이긴 했다는 걸 또 깨닫기도 한다.
도쿄에 오고 1년 반 동안은 회사 생활 적응과 낯선 나라의 적응에 못했던 것들을 이번 기회에 쉬는 동안 부지런하게 해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 고마운 시간들은 1년 반동안의 내가 지독하게 열심히 살았던 시간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이라는 걸 알고 있다. 여전히 그때의 내가 짠하고 또 고맙다. 덕분에 오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나서 3개월은 정말 이 도쿄라는 도시에서 자유롭게 살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특히 최근 10월 마지막주부터 11월 초까지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한국에서 친구들을 초대해 생일파티를 하고, 부모님이 놀러와서 근교 하코네로 고텐바아울렛으로 요코하마로 여행을 떠났다.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전시를 보러가고 후지산으로 캠핑을 다녀왔다.
도쿄로 이사를 오기로 결심하며 내 안에서도 하고 싶었던 것들이 꽤 있었다.
-캠핑과 커피에 취미 붙여보기
-쉬는 날 황궁이나 도쿄타워 러닝을 하고 도쿄 카페에서 주말 오전 시간 보내기
-도쿄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어 집에 초대해 음식 해먹기.
-그렇게 새롭게 사귄 친구들을 나의 소중한 한국 친구들과도 연결해주고 싶다.
-준완과 같이 도쿄 근교로 서핑, 보드를 타러 가며 계절 스포츠를 하고 싶다.
-일본을 더 많이 공부하고, 일본 내 국내 여행을 계획하며, 그 과정들을 콘텐츠로 만들고 싶다.
이렇게 적어두고 2년동안 부지런히 이루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난 이 안에서 나와 우리 집의 키워드에는 '인간관계'에 대한 다정한 시선과 '새로운 경험'과 '여행'에 대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는 성향이 보인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나열했을 뿐이지만 이곳의 나의 가치에 대한 힌트들이 모여있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인생의 꽤나 우선순위에 올라와있다는 증거이다.
최근 2주 동안 도쿄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나의 과제들 중에 많은 것들을 도장깨기처럼 해내고나자, 정말 신기하게도 다시 '나의 일'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만둔 이후로 정기적으로 영상 콘텐츠를 만들고, 프리랜서로 일을 받고, 고맙게도 일본인 친구들과 한국어 과외를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면접도 한 건 진행했었네. 하지만 이렇게 하는 일에는 나의 정신적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지 않는다. 비교적 제약없이 자유로운 틀 안에서 해볼 수 있고, 무엇보다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는 선택의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 자유가 인간에게 주는 기쁨은 얼마나 큰지 모른다. 스트레스가 거의 0에 수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도쿄에서 아직 해보지 않은 것이 있다면 '일본에서의 이직'이다. 여전히 두려움이 많은 영역이지만,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있기에 더 도전해야하는 영역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시 삶을 풍족하게 만드는 수단이라는 것을 잘 알고있다.
지난 회사에서도 다른 나라로 전적을 하긴 했지만, 전형이 스무스하게 진행됐기 때문에 정말 야생에서, 맨땅에서 하는 이직은 지금부터라는 생각이다. 전체 전형을 일본어와 영어로만 진행해야하고 내가 한국에서 쌓았던 스킬셋을 기반으로 일본 시장에서 먹힐것이라고 어필해야하기 때문이다. 여러 규모의 회사를 거치다보니 이제는 나에게 잘 맞는 직무도 선택해야하고, 또 나의 미래를 같이 하고 싶은 회사를 선택하는 데에도 다양한 기준들이 생겼다.
이 때 이 기준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결국 앞서 말한, 나만의 가치이자, 내가 인생에서 우선순위로 생각하는 것들이다. 내 일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직장을 고르는 이 선택만큼은, 또 실패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참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 스스로에게 어떤 질문을 던져서 어떤 답을 내고, 그것에 기반하여 어떤 선택들을 할 것인지. 나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