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년차 직장인의 유형별 인간 도감 시리즈(5)
한 통의 메신저가 도착했다. 함께 일하던 후배였다.
"선배, 저 자리를 옮기게 될 것 같아요. 늦게 말씀드려서 죄송해요."
물음표가 머릿속에 가득 찼다. 당장 다음 주부터 시작될 프로젝트며, 산더미처럼 쌓인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서운함보다 먼저 튀어나온 건 걱정과 궁금증이었다.
"...? 정말? 어디로 가는데?"
후배가 밝힌 새로운 직장은 다름 아닌 우리의 광고주 회사였다. 늘 클라이언트의 결정에 목매고, 밤샘과 수정을 반복하며 '을'의 서러움을 곱씹던 우리였다. 그런 우리에게 동고동락하던 동료가 '갑'의 세계로 입성한다는 소식은, 마치 우리 팀 전체의 경사처럼 느껴졌다.
"이야, 잘됐네! 언제부터 가기로 했어?"
"다음 주부터요. 회사에는 이미 얘기 다 끝냈고... 정리할 게 많아서 미처 얘기를 못 했어요."
당장 손발을 맞추던 파트너가 사라지는 것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응원하는 마음이 더 컸다.
그곳에 가서 우리 입장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해 주는 든든한 우군이 되어주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그 기대가 무참히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받았다.
"선배, 내일 좀 볼 수 있을까요?"
"내일? 응, 좋지. 근데 무슨 일로?"
"하반기 마케팅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좀 정리해서 들어와 줄래요?"
'들어와 줄래요?' 어딘가 어색한 표현이었지만, 새로운 회사와 업무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밤을 새워 하반기 계획안을 다듬고, 다음 날 그의 회사가 있는 빌딩 로비에 도착해 전화를 걸었다.
"나 로비에 도착했어. 어디로 가면 돼?"
"아, 선배. 제가 지금 기자들하고 얘기 중이라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그렇게 로비의 딱딱한 소파에 앉아 1시간을 꼬박 기다렸다.
마침내 나타난 그는 어딘가 모르게 피곤하고, 또 분주해 보였다.
"많이 바쁘지?"
"아~ 어젯밤에도 기자들 만나서 한잔하느라... 뭔 술을 그렇게 마시는지..."
"컨디션 괜찮아? 힘들 텐데. 계획안 설명해 줄까?"
내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그는 연신 휴대폰을 확인하며 누군가와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그리고는 잠시 후, 마치 큰 선심이라도 쓰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선배, 제가 지금 바로 올라가 봐야 해서. 그거 그냥 제 메일로 보내줄래요?"
그가 사라진 뒤, 나는 손에 든 묵직한 기획안과 함께 텅 빈 로비에 한참을 서 있었다.
밤새 공들여 만든 결과물은 한순간에 '그냥 메일로 보낼 것'이 되었고, 선배와의 약속은 '기자들과의 만남' 뒤로 밀려난 지 오래였다. 그날, 나는 후배가 아닌 '광고주님'을 만나고 온 것만 같았다.
시간이 흘러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다. 1년간의 투병 끝에 어머니가 하늘로 가신 것이다.
슬픔과 절망 속에서 장례를 치르는데, 많은 동료와 지인들이 찾아와 주었다. 그리고 그 후배도 장례식장에 나타났다. 검은 옷을 입은 그는 조문객이라기보다, 잠시 업무 미팅에 들른 사람처럼 보였다.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바쁠 텐데 와줘서 고마워."
"다음 주 일정, 괜찮으시겠어요?"
"... 어... 해야지."
그의 입에서 나온 다음 말에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그는 다음 주 납품할 프로젝트 결과물을 떠올리고 있었다. 일정을 조금만 늦춰주면 안 되겠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그의 표정에서는 그 어떤 유연성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어머님 잘 보내드리고, 그럼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그는 조문을 온 것인지, 업무 협조를 구하러 온 것인지 모를 용건만 간단히 마친 채 30분도 안 되어 자리를 떴다. 내가 알던, 함께 웃고 떠들던 그 후배는 더 이상 그곳에 없었다.
그로부터 반년쯤 지났을까. 그가 회사를 그만뒀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상사와의 불화로 사표를 냈다고 했다.
그 후로 나는 그의 소식을 굳이 찾아 듣지 않았다. 궁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은 좁았고, 원치 않아도 그의 근황은 간간이 들려왔다.
유학을 갔다는 이야기, 그리고 어느 날부터인가 작가가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마음이 통하는 소통', '진정한 리더십' 같은 주제로 책을 냈다고 했다. 심지어 이름도 생소한 작은 대학의 교수로 임용되었다는 말도 들려왔다.
나는 생각한다.
진정한 지혜와 진심은,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시간을 오롯이 살아내고, 그 속에서 겪는 성공과 실패의 경험이 충분히 쌓이고 발효되었을 때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라고.
그렇게 얻어진 단단한 한 글자, 한 문장이 모여 다른 사람에게 울림을 주는 책이 된다고 말이다.
나는 그가 보낸 시간들을 의심한다.
그는 과연 어떤 시간에, 어떤 과정에서 소통의 가치를 깨닫고 리더십을 통찰했을까?
갑의 완장을 차고 선배를 하대하던 그 짧은 시간 속에서, 상사의 장례식장에서 다음 주 일정을 묻던 그 경험 속에서, 타인과 나눌 만한 '진심 어린 지혜'를 얻을 수 있었을까?
그 후배 덕분에 나에겐 하나의 버릇이 생겼다.
서점에 즐비한 자기 계발서, 특히 '경험'을 파는 책들을 보면 한 번쯤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게 되는 버릇 말이다. 저 화려한 문장과 그럴듯한 통찰 뒤에는, 과연 얼마나 진실한 시간이 담겨 있을까.
어쩌면 이건 나름 유용한 직업병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