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 관하여, 매혹과 지배의 경계선

카사노바와 바이런, 시대를 초월한 나쁜 남자들의 서울 데이트(1)

by 공감디렉터J

강남의 한 고급 카페, 창가에 나란히 앉은 두 명의 남자가 있다.

한 명은 세련된 18세기 귀족풍 복장을 한 50대 초반의 이탈리아인, 다른 한 명은 낭만적인 분위기의 19세기 영국 복장을 한 30대 중반의 영국인. 시간을 초월한 두 명의 '나쁜 남자'가 만난 것이다.


카사노바: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마시며) 이런 세상에 다시 올 기회를 갖게 되다니, 참으로 흥미롭군요. 자코모 카사노바입니다. 18세기 베네치아 출신의... 음, 모험가라고 할까요? 혹은 세상이 저를 '바람둥이'라고 부르는 것을 선호하신다면, 그것도 좋습니다. (미소)


바이런: (위스키를 홀짝이며) 조지 고든 바이런, 6대 바이런 남작입니다. 영국 낭만파 시인이자, '매드, 배드, 앤 데인저러스 투 노우(미치고, 나쁘고, 알기에 위험한)'라고 불렸죠. 저의 시보다 제 스캔들이 더 유명했던 것 같군요. 그런데 이 '커피'라는 음료, 꽤 맛있군요. 제 시대에도 있었지만,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즐기지는 않았어요.


카사노바: 바이런 경, 당신의 명성은 제 시대 이후에도 널리 퍼졌더군요. 여성들에 관한 한, 우리가 비슷한 취향을 가졌다고 들었습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우리는 '나쁜 남자'로 불리는 것 같은데, 여성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바이런: (생각에 잠겨) 여성이란... 제게는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이었습니다. 그들의 아름다움, 감성, 복잡한 내면세계... 저는 모든 여성이 고유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한 여성에게만 헌신하는 것이 불가능했어요. 그것이 제가 '나쁜 남자'로 낙인찍힌 이유겠죠?


카사노바: (웃으며) 우리 시대에는 그런 행동이 그렇게 이례적이지 않았습니다만, 지금 생각해보면... 확실히 문제가 있었군요. 저는 여성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단순한 육체적 욕망만은 아니었어요. 저는 그들의 마음, 영혼, 지성에 매료되었습니다. 제게 여성은 단순한 유희가 아닌, 깊은 탐구의 대상이었죠.


바이런: 그렇군요. 저도 비슷한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의 관점으로 보면, 우리는 여성의 자율성을 충분히 존중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종종 '소유'하고 싶었고, 그것이 저의 파멸의 씨앗이기도 했죠.


카사노바: (고개를 끄덕이며) 맞습니다. 우리는 여성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현대적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제 회고록을 보면, 저는 항상 상호 동의를 중요시했지만, 그 '동의'의 개념이 지금과는 달랐죠. 권력 관계가 불균형했으니까요.


바이런: 그래서 오늘날의 페미니즘이 우리를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군요. 저는 여성을 숭배했지만, 동시에 그들을 통제하려 했습니다. 이러한 모순이 제 작품과 삶 전체에 깊이 새겨져 있었죠.


카사노바: 저도 비슷한 모순을 안고 살았습니다. 여성의 기쁨을 중요시했지만, 결국 제가 주도권을 쥐고 있었죠.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분명히 문제적입니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아, 변명처럼 들리네요.


바이런: (창밖을 바라보며) 서울의 여성들을 보세요. 자신감 넘치고, 독립적이고, 당당하군요. 우리 시대와는 너무나 다릅니다. 그들은 더 이상 우리 같은 '나쁜 남자'에게 매혹되지 않을 것 같아요.


카사노바: (미소 지으며) 글쎄요, 바이런 경. 시대는 변했지만, 인간의 본성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매력, 미스터리, 위험... 이런 요소들이 주는 끌림은 여전히 존재하지 않을까요? 다만 지금의 '나쁜 남자'는 우리와는 다른 모습일 테지요.


바이런: 아마도 그럴 겁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나쁜 남자'는 적어도 여성의 동등함을 인정해야 할 것 같군요. 지배가 아닌 동반자로서의 관계... 우리가 이해하지 못했던 개념이죠.


카사노바: (고개를 끄덕이며) 맞습니다. 여성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인간으로 존중하는 것...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었군요. 아마 그것이 진정한 '좋은 남자'의 첫 번째 조건이 아닐까 싶습니다.


(카페의 젊은 커플들을 바라보며 두 사람은 잠시 침묵한다)


바이런: 우리가 많은 여성들의 마음을 상처 입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겠군요. 제가 애니 이사벨라 부인과 이혼한 후, 그녀가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카사노바: 저 역시 많은 여성들에게 영원한 사랑을 약속했지만 지키지 못했습니다. 후회되는 순간들이 있군요. 하지만 우리는 적어도 솔직했습니다. 그것만은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바이런: 솔직함이요? 글쎄요... 우리는 때로 자기기만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우리는 여성의 매력과 힘을 깊이 이해했고,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켰죠. 제 시와 당신의 회고록이 아직도 읽히는 이유가 아닐까요?


카사노바: (에스프레소를 다 마시며) 맞습니다. 사랑과 욕망의 복잡한 본질을 우리는 피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유산이라면, 적어도 그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 있겠군요.


바이런: 다음에는 우리의 연애관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그것도 꽤 흥미로운 주제가 될 것 같군요.


카사노바: (미소 지으며) 좋은 생각입니다, 바이런 경. 아마 그 주제에 관해서는 우리가 현대인들에게 몇 가지 교훈을 줄 수도 있을 겁니다... 좋든 나쁘든 말이죠.



세기의 나쁜 남자로 불리는 두 사람은 여러 여성과 관계를 맺었다는 기록이나 평판으로 유명하긴 하지만, 단순히 이성과의 관계뿐 아니라 각자의 시대에 독특한 삶을 살았던 인물들이기도 합니다.


자코모 카사노바 (Giacomo Casanova, 1725~1798)

'바람둥이'의 대명사로 불리는 자코모 카사노바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출신의 모험가이자 작가입니다. 그의 이름 자체가 '호색한'이라는 의미로 사용될 정도로 여성 편력이 유명했죠.

그는 단순히 여성을 유혹하는 것을 넘어, 성직자, 사기꾼, 스파이, 연금술사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자서전에는 122명의 여성과의 관계가 기록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당시 유럽 상류층의 침실을 드나들며 사교계를 주름잡았다고 합니다.

카사노바는 뛰어난 언변과 지성을 겸비하여 많은 여성들에게 매력을 어필했으며, 자유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전해집니다.


조지 고든 바이런 (George Gordon Byron, 1788~1824)

영국 낭만파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 또한 역사상 유명한 바람둥이 중 한 명입니다. 잘생긴 외모, 탁월한 말솜씨, 모험가 기질, 그리고 뛰어난 지성까지 겸비했던 그는 많은 귀족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바이런은 문학적 성취도 뛰어났지만, 그의 사생활은 스캔들로 가득했습니다. 수많은 여성들과의 염문설은 물론, 가족과의 복잡한 관계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죠. 그는 여성에게 정착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성이 그에게 깊이 빠져들었다고 전해집니다.

이 두 인물은 단순히 많은 여성과 관계를 맺었다는 점을 넘어, 각자의 시대에 자신만의 매력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후대에까지 회자되는 삶을 살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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