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택시: 동료 기사의 이야기

열아홉번째 에피소드

by 공감디렉터J


도시의 불빛이 아득하게 발아래 펼쳐지는 북악스카이웨이의 가장 깊은 밤.

김기사의 택시는 길가의 한적한 주차 공간에 멈춰 서 있었다.

엔진은 꺼져 있었고, 차 안에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잠시 후, 맞은편에서 또 한 대의 검은 택시가 소리 없이 다가와 멈췄다.

모델도, 색상도, 심지어 번호판까지 똑같은, 또 다른 ‘이별택시’였다.


맞은편 택시에서 내린 것은 60대쯤으로 보이는, 온화한 인상의 남자였다.

그는 김기사의 택시로 다가와, 승객이 타는 뒷좌석의 문을 열고 조용히 올라탔다.

오늘은 김기사가 승객을 맞는 날이 아니었다. 동료를 만나는 날이었다.


“오랜만이군, 김기사.”

“이기사님.”


새로 탄 남자, 이기사는 이 도시의 어딘가에서 김기사와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또 한 명의 운전사였다.

그는 본래 상담사였다.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치유했지만, 정작 자신의 딸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다 이별택시의 승객이 되었고, 그 후 운전대를 잡게 된 사람이었다.


“오늘은 내가 승객이야.” 이기사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한 아이를 태웠네. 친구에게 배신당한 여고생이었지.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데... 꼭 내 딸아이를 보는 것 같아서... 견딜 수가 없었어. 그 아이를 내려주고 돌아오는데, 핸들을 잡을 수가 없더군. 내가 지금껏 수백 명의 슬픔을 담아내기만 했지, 단 한 번도 비워내질 못했다는 걸 깨달았네.”


그의 고백은 이별택시 기사만이 겪을 수 있는 ‘직업병’에 대한 것이었다.

타인의 슬픔을 담는 그릇이 되어주다, 어느 순간 그 슬픔의 무게에 그릇 자체가 금이 가버리는 상태.

그는 더 이상 다음 승객을 태울 자신이 없었다.

그의 이별은, 이 거룩하고도 잔인한 사명 그 자체와의 이별이었다.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김기사가 처음으로 동료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이것은 일방적인 위로가 아닌, 같은 상처를 가진 자들의 대화였다.


“저도 매일 밤, 제가 떠나온 전장을 봅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목적지도, 요금도 없는 운행이었다.

그들의 차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그들의 마음은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가장 깊은 곳까지 여행했다.

대화가 끝날 무렵, 이기사의 눈앞에 익숙한 화면이 떠올랐다.


[ 치유 ] / [ 권고 ]


이기사는 희미하게 웃으며 [치유]를 눌렀다. 그러자 김기사가 선배이자 동료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우리는 그들의 슬픔을 덜어주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저 그들이 자신의 슬픔을 온전히 쏟아낼 수 있도록, 텅 빈 그릇이 되어줄 뿐입니다. 그릇은 담았다가, 비워내야 합니다. 우리 자신까지 그 슬픔으로 채워버리면, 다음 승객을 태울 수 없게 되니까요.”


그 말은 치유의 주문이자, 그들이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와 방법에 대한 재확인이었다.

이기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에서 내렸다. 그의 발걸음은 올 때보다 한결 가벼워 보였다.

그는 자신의 택시로 돌아가, 내일의 승객을 맞이할 준비를 할 것이다.


두 대의 이별택시는 서로의 안녕을 비는 짧은 경적을 울린 뒤, 각자의 길을 향해 도시의 밤 속으로 흩어졌다.


스스로의 상처를 길잡이 삼아 타인의 어둠을 밝히는 자들은,
때로는 서로의 빛을 마주해야만 다시 나아갈 길을 찾을 수 있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