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 판도라의 상자
2027년 3월 20일, 오후 2시.
붉은 나비의 등장은 수사대를 혼돈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다.
'마에스트로'는 이제 단순한 추적의 대상이 아니었다.
팀원 각자의 가장 깊은 상처를 알고, 그것을 무기 삼아 그들의 영혼을 난도질하는 실체적인 악마였다.
강태우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이건 더 이상 수사가 아닙니다. 전쟁입니다."
그의 선언에, 뿔뿔이 흩어져 있던 팀원들의 시선이 다시 하나로 모였다.
분노와 슬픔, 죄책감으로 흐려졌던 눈빛에 서서히 결의가 차올랐다.
한서진이 일어섰다.
"증거를 찾아야 해요. 감정이 아니라 증거로. 그게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팀은 '소나타 옵스큐라'의 미발표 곡과 '붉은 나비'라는 상징을 단서로, 국내외 클래식 음악계와 미술계를 샅샅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박유진은 그녀의 인맥을 총동원해 잊힌 작곡가와 화가들의 계보를 추적했다.
이지수는 전 세계의 다크웹과 비밀 포럼을 샅샅이 뒤졌다.
오민재는 '마에스트로'의 심리 프로파일을 작성했다.
그리고 마침내,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찾았어요!"
이지수의 외침에 모두가 그녀에게로 모였다.
화면에는 20여 년 전, 유럽의 한 음악 콩쿠르 관련 기사가 떠 있었다.
[K-클래식 세계 정상에 우뚝! 대한민국 천재 지휘자 권도윤, 빈 국제 콩쿠르 우승]
[2005년 6월 15일]
기사에는 한 젊은 남자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스물다섯 살 남짓의 그는, 오만할 정도로 자신감 넘치는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권도윤. 1980년생. 2005년 당시 25세였네요."
이지수가 설명했다.
"빈 국제 콩쿠르 역사상 최연소 우승자. 모든 심사위원이 만장일치로 그를 선택했대요. '천재'라는 말로도 부족하다고 했어요."
기사는 그의 화려한 데뷔와 찬란한 미래를 예고했다. 베를린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과의 협연 제안이 쏟아졌고, 그는 클래식 음악계의 새로운 별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 아래에는 아주 작은 단신 기사가 하나 더 있었다.
[천재 지휘자 권도윤, 불의의 사고로 은퇴]
[2005년 8월 3일]
권도윤이 그 콩쿠르 직후, 의문의 교통사고로 오른손을 크게 다쳐 다시는 지휘봉을 잡을 수 없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 후, 그는 연기처럼 클래식계에서 사라졌어요."
이지수가 스크롤을 내렸다.
"2005년 이후 그의 행적은 거의 없어요. 가끔 클래식 관련 행사에 후원자로 이름이 올라오는 정도. 하지만 직접 모습을 드러낸 적은 없어요."
"잠깐만요... 권도윤."
강태우의 얼굴이 하얗게 굳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11년 전 '조각가' 사건 파일을 뒤졌다.
"이 이름... 본 적 있어요."
그는 파일을 펼쳤다. 2016년 당시 용의선상에 올랐으나, 완벽한 알리바이와 사회적 지위 때문에 수사망에서 일찌감치 배제되었던 인물들 중 한 사람.
[권도윤 (당시 36세) - 음악 후원가, 알리바이 확인됨, 용의선상 제외]
강태우의 손이 떨렸다.
"'조각가'의 첫 번째 피해자, 이수진 씨의 단독 콩쿠르 후원자 명단에 권도윤의 이름이 있었어요."
"그럼..."
한서진이 자신의 파일을 펼쳤다.
그리고 언니 한서영이 가입했던 '소나타 옵스큐라'의 후원자 명단에서, 같은 이름을 발견했다.
[후원자: 권도윤]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그 순간, 모든 퍼즐 조각이 제자리를 찾아가며 끔찍한 그림을 완성했다.
"이 사람이..."
박유진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 동생을 유인한 '클래식 음악 선생님'도 이 사람일 거예요."
오민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제 동생을 괴롭혔던 사이버 불링 조직도... 이 사람이 만들었을 거예요."
강태우는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그는 권도윤의 사진을 중앙에 붙이고, 모든 사건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권도윤 - 마에스트로]
2005년: 교통사고로 오른손 부상, 지휘자 은퇴
2005년: '소나타 옵스큐라' 온라인 동호회 개설
2006년: 박유진 동생(유미) 실종
2011년: 한서진 언니(한서영) 살해
2016년: '조각가' 연쇄살인 (4명)
2020년: 오민재 동생(민서) 사이버 불링 → 자살
2027년: 공민혁 살해
"그는 자신의 부서진 꿈을 대신해, 다른 사람의 인생을 연주하기 시작한 거예요."
오민재가 분석했다.
"그는 사회적으로 성공했지만 내면에 어둠을 가진 이들을 '악기'로 골랐어요. 그들의 약점을 파고들어 심리를 조종하고, 그들을 자신의 손발처럼 움직여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게 했어요."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하나의 '연주'로 여기며 희열을 느꼈던 거예요."
한서진이 덧붙였다.
강태우는 주먹을 쥐었다.
"11년 전, 제가 쫓았던 '조각가'는 권도윤의 첫 번째 '솔리스트'였어요. 그는 단지 악기였을 뿐이에요. 진짜 지휘자는 권도윤이었어요."
"16년 전, 제 언니를 살해한 진범도 그의 두 번째 '솔리스트'였겠죠."
한서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21년 전, 제 동생을 유인한 '친절한 클래식 선생님'은 권도윤 자신이었거나, 혹은 그의 또 다른 '단원'이었을 거예요."
박유진이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7년 전, 제 동생을 괴롭혔던 익명의 가해자들 역시, 그의 지휘 아래 움직인 '합창단'에 불과했어요."
오민재가 말했다.
사무실의 모두가 할 말을 잃고 망연자실했다.
수사대의 모든 비극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권도윤이라는 악마가 22년에 걸쳐 설계하고 지휘한, 거대한 악의 교향곡이었다.
그들은 진실을 좇는 과정에서, 자신들도 모르게 그의 악보 위를 걷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그는 어디 있죠?"
강태우가 물었다.
"권도윤의 부동산 등기부를 확인 중이에요. 서울 용산구에 건물을 소유하고 있네요. 그리고..."
이지수가 기다렸다는듯이 소리없이 캐낸 정보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경기도 가평에 별장이 하나 더 있어요. 2005년에 구입했네요."
"2005년..."
강태우가 중얼거렸다.
"사고가 난 해. 그때부터 계획을 시작한 거예요."
"가평 별장 주소 알 수 있어요?"
"네. 하지만..."
이지수가 화면을 가리켰다.
"전기 사용량이 거의 없어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것 같아요."
"용산구 건물은요?"
"상가 건물이에요. 1층은 카페, 2층은 음악 학원, 3층은 비어 있어요. 4층과 5층이 권도윤의 거주 공간으로 등록되어 있네요."
"그럼 거기로 가야겠네요."
강태우가 일어섰다.
"잠깐, 팀장님."
오민재가 말렸다.
"너무 위험해요. 그는 우리를 알고 있어요. 우리가 오는 걸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그래도 가야 합니다. 이제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어요. 그도 알고 있을 거예요."
강태우는 팀원들을 바라봤다.
"하지만 혼자 가지는 않을 거예요. 우리 모두 함께 갑니다."
자신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든 고통이, 한낱 악마의 유희에 불과했다는 진실 앞에서 그들은 무력감을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분노가 타올랐다. 이제 그들은 알았다. 자신들이 누구와 싸우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
가장 큰 영광은 한 번도 실패하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실패할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 데 있다.
(The greatest glory in living lies not in never falling,
but in rising every time we fall)
- 넬슨 만델라 (Nelson Mandela)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