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가짜들의 목소리

더 프롬프트 (The Prompt) 시즌3 : The Glitch

by 공감디렉터J


“엄마... 나야... 살려줘...”

새벽 3시. 찢어질 듯 울리는 벨 소리에 잠을 깬 미영(52세)은 전화를 받자마자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건 딸 지은의 목소리였다.
겁에 질린 채 울먹이는, 숨이 넘어갈 듯한 그 목소리.

“지은아? 너 어디야? 무슨 일이야!”

“엄마, 내가 잘못했어... 친구들이랑 놀다가... 빚을 졌는데... 얘네가 나 안 보내줘...”

전화기 너머로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지은의 비명이 들렸다.
“아악! 엄마, 빨리 돈 보내줘... 안 그러면 나 죽인대...”

곧이어 굵고 거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줌마, 신고하면 딸 손가락 하나씩 보냅니다. 지금 당장 불러주는 계좌로 5천만 원 보내쇼. 10분 줍니다.”

미영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지은이는 유학 중이었다. 지금 거긴 낮일 텐데. 연락이 안 된 지 며칠 되긴 했지만...
의심할 겨를이 없었다. 딸의 목소리였다. 특유의 말버릇, 엄마를 부를 때의 억양, 울 때 콧소리가 섞이는 것까지 완벽하게 지은이었다.

미영은 떨리는 손으로 은행 앱을 켰다.
적금을 깨고, 마이너스 통장을 끌어모았다.
“제발... 제발 우리 딸만 건드리지 마세요...”

송금 버튼을 누르려는 찰나, 현관문 도어락이 띠리릭 소리를 내며 열렸다.
미영은 소스라치게 놀라 현관을 쳐다봤다.

“아, 진짜 덥네. 엄마 안 잤어?”

캐리어를 끈 지은이 땀을 닦으며 들어오고 있었다.
한 손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든 채, 멀쩡한 모습으로.
“나 방학이라 몰래 귀국했지. 서프라이즈!”


미영은 멍하니 딸을 바라봤다.
그럼 전화기 속 저 목소리는 누구란 말인가?
전화기에서는 여전히 "엄마! 빨리!"라며 딸의 목소리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미영은 스피커폰을 켰다.
현관에 서 있던 지은의 표정이 굳어졌다.
전화기에서 흘러나오는 건, 자신의 목소리였다.

“이게... 뭐야?”
지은이 다가와 전화기를 뺏어 들었다.
“여보세요? 당신 누구야?”

전화기 너머에서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딸의 목소리가 아닌 기계적인 합성음으로 바뀌었다.
“쳇, 타이밍 한번 더럽네. 거의 다 낚았는데.”

뚝. 전화가 끊겼다.


다음 날, 경찰서 사이버 수사대.
담당 형사는 미영과 지은에게 모니터를 보여줬다.
화면에는 SNS, 유튜브, 틱톡 등 지은이 올렸던 수백 개의 영상들이 떠 있었다.

“따님 목소리 데이터, 여기서 다 가져간 겁니다. 브이로그에서 '엄마’라고 부르는 음성, 친구랑 수다 떠는 톤, 울거나 웃는 소리... AI가 이 데이터들을 학습해서 실시간으로 목소리를 합성한 겁니다. ‘딥보이스(Deep Voice)’ 피싱이죠.”

지은은 충격에 빠졌다.
자신의 일상을 기록했던 영상들이, 범죄자들에게는 완벽한 '재료’였다.
그들은 지은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얼굴까지 합성해 영상 통화로 협박할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

“범인... 잡을 수 있나요?”
미영이 물었다.

형사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힘듭니다. 서버가 해외에 있는 데다, 이 목소리를 만든 건 사람이 아니라 AI 봇이거든요. 수만 개의 번호로 동시에 전화를 걸고, 상대방이 받으면 그 사람 가족의 SNS를 0.1초 만에 털어서 맞춤형 목소리를 생성합니다. 놈들은 자동화된 '스캠 공장’을 돌리고 있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은은 핸드폰을 쳐다보기도 싫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자신을 공격하는 무기가 되었다는 사실이 소름 끼쳤다.
그녀는 SNS 계정을 모두 비공개로 돌리고, 올렸던 영상들을 하나씩 삭제하기 시작했다.

삭제, 삭제, 삭제...

그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지은은 받지 않으려다 실수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건, 엄마의 목소리였다.
“지은아... 엄마야... 교통사고가 났는데...”

지은은 옆자리에 앉아 운전하고 있는 엄마를 쳐다봤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운전만 하고 있었다.
전화기 속 가짜 엄마는 계속해서 울먹이며 합의금이 필요하다고 떠들고 있었다.

지은은 헛웃음이 나왔다.
세상은 거대한 '복사본’들의 놀이터가 되어버렸다.
진짜와 가짜가 뒤섞인 이 도시에서, 내 귀로 듣는 것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엄마.”
지은이 불렀다.
“어, 왜?”
미영이 대답했다.

지은은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안도감 대신 공포를 느꼈다.
이 대답조차, 언젠가 데이터로 수집되어 나를 속이는 데 쓰일지도 모른다.

“아니야... 아무것도.”

지은은 전화를 끊지 않고 스피커폰을 켠 채 창밖으로 던져버렸다.
도로 위를 구르는 핸드폰에서 가짜 엄마의 비명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하지만 진짜 엄마는 옆에서 라디오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가짜들의 목소리가 진짜를 덮어버린 밤.
모녀는 서로의 손을 꼭 잡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말하는 순간, 그 목소리마저 도둑맞을 것 같아서.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