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프롬프트 (The Prompt) 시즌3 : The Glitch
“저기요, 이 자리 제 자리인데요?”
서윤(29세)은 자신의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는 낯선 여자를 보고 멈칫했다.
여자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서윤은 숨이 턱 막혔다.
여자는 서윤과 똑같이 생겼다. 아니, 서윤보다 더 ‘서윤답게’ 생겼다.
그녀가 평소 즐겨 입던 베이지색 카디건, 즐겨 쓰는 향수 냄새, 심지어 왼쪽 눈 밑의 작은 점까지 완벽했다.
“무슨 소리세요? 여긴 제 자리인데요. 강서윤 과장 자리요.”
여자가 상냥하게 웃으며 말했다. 목소리마저 똑같았다.
“당신 누구야? 내가 강서윤이야!”
서윤이 소리쳤지만, 여자는 여유롭게 사원증을 들어 보였다.
거기엔 서윤의 사진과 이름이 박혀 있었다.
직원들이 웅성거리며 모여들었다.
“어? 강 과장님이 두 명이야?”
“뭐야, 쌍둥이였어?”
팀장이 나타났다.
“무슨 소란이야? ... 어?”
팀장도 두 명의 서윤을 번갈아 보며 혼란에 빠졌다.
서윤은 팀장에게 매달렸다.
“팀장님, 저예요! 어제 팀장님이랑 옥상에서 커피 마시면서 프로젝트 얘기했잖아요!”
하지만 자리에 앉아 있던 여자가 차분하게 말을 끊었다.
“팀장님, 이 사람 미친 사람 같아요. 어제 옥상에서 저한테 '이번 프로젝트 망하면 다 죽자’고 농담하셨잖아요. 제가 그때 라떼 사드렸고요.”
팀장의 눈이 커졌다.
“맞아... 내가 라떼 마셨지.”
팀장은 의자에 앉은 여자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진짜군. 그럼 저 여자는 뭐야?”
서윤은 억울해서 미칠 것 같았다.
“아니에요! 제가 진짜라고요! 저 여자가 거짓말하는 거예요!”
그때, 보안 요원들이 달려왔다.
“신분증 확인하겠습니다.”
서윤은 지갑에서 주민등록증을 꺼내려 했다.
하지만 지갑이 없었다. 가방도, 핸드폰도 먹통이었다.
어제 술집에서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가방이 사라졌던 게 떠올랐다.
보안 요원이 스캐너로 서윤의 얼굴을 스캔했다.
삐빅-
신원 확인 불가.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얼굴입니다.
“뭐라고요?”
서윤은 경악했다.
반면, 의자에 앉은 여자를 스캔하자
띠링-
강서윤(30세), 마케팅팀 과장. 신원 확인 완료.
“이 사기꾼! 끌어내!”
보안 요원들이 서윤의 팔을 꺾었다.
“놔! 이거 잘못됐어! 내가 강서윤이라고!”
서윤은 발버둥 쳤지만, 회사 밖으로 질질 끌려나갔다.
그녀는 '리플리 2.0’의 피해자였다.
가방을 훔친 여자는 단순히 물건만 훔친 게 아니었다.
서윤의 스마트폰, 지문, 홍채 데이터, 그리고 SNS에 올라온 10년 치의 일상 기록을 모두 해킹했다.
그리고 딥페이크 성형수술과 AI 행동 교정 훈련을 통해 완벽한 '강서윤’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반대로 진짜 서윤의 데이터는 국가 전산망에서 교묘하게 삭제하거나 왜곡시켜버렸다.
서윤은 경찰서로 갔지만 소용없었다.
지문 조회 결과는 ‘신원 미상’ 혹은 '사망한 노숙자’로 나왔다.
집 도어락도 열리지 않았고, 은행 계좌도 동결되었다.
그녀는 세상에서 지워졌다.
밤거리, 쇼윈도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서윤은 오열했다.
내가 나인데, 왜 증명할 수가 없지?
세상은 나라는 '육체’보다, 서버에 저장된 '데이터’를 더 신뢰했다.
데이터가 없으면 인간은 고깃덩어리에 불과했다.
반면, 가짜 강서윤은 서윤의 집에서 서윤의 잠옷을 입고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그녀는 거울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지? 내가 더 열심히 살 거야, 강서윤.”
그녀는 서윤의 SNS에 사진을 올렸다.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 #직장인 #힐링
좋아요가 수백 개 찍혔다.
친구들이 댓글을 달았다. “언니 오늘 예쁘다!”, “힘내!”
진짜 서윤은 밖에서 추위에 떨며 그 게시글을 훔쳐보고 있었다.
그녀는 댓글을 달려고 했지만, [로그인이 필요합니다]라는 창만 뜰 뿐이었다.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의 인생은 도둑맞은 게 아니라, '대체’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세상은 더 완벽하고, 더 행복해 보이고, 더 결점 없는 '가짜’를 진짜로 받아들이기로 합의했다는 것을.
서윤은 핸드폰을 바닥에 내리쳤다.
하지만 부서진 액정 속에서도 가짜의 미소는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어두운 골목으로 사라졌다.
이제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누군가의 그림자가 되어 또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훔칠 기회를 노리는 것뿐이었다.
이 도시에서 살아남으려면, 누군가는 반드시 '진짜’가 되어야 했으니까.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