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나는 자연인이다, 그러나 병원은 멀다

시간의 다방 : 그레이네상스, 다시 피어나는 꽃

by 공감디렉터J


“으윽... 배가...”

강원도 산골의 밤은 칠흑 같았다. 강태석(65세) 씨는 식은땀을 흘리며 방바닥을 굴렀다.
갑자기 찾아온 복통. 맹장인가? 결석인가?
“여보! 119! 빨리!”
아내는 손을 떨며 전화를 걸었지만, 산 넘고 물 건너 구급차가 오려면 1시간은 족히 걸린다.
‘이러다 죽는 거 아냐? 내가 미쳤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산골짜기에 들어와서...’


3년 전, 은퇴하고 귀농할 때만 해도 꿈에 부풀어 있었다. 직접 지은 황토방, 텃밭, 맑은 공기.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유유자적 살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밤이면 멧돼지가 내려오고, 겨울엔 수도가 얼어 터지고, 무엇보다 아플 때 병원이 너무 멀었다.

고통 속에 정신이 혼미해질 무렵, 황토방 문이 열리고 낯선 남자가 들어왔다.
하얀 가운을 입고 청진기를 목에 건 의사. 그런데 신발은 흙투성이 장화를 신고 있었다.

“환자분, 통증이 심하시죠? 급성 요로결석입니다.”

의사가 태석의 배를 눌러보며 진단했다.

“선생님... 저 좀 살려주세요. 너무 아파요.”

“걱정 마세요. 제가 왕진 왔습니다.”

의사가 왕진 가방을 열었다. 그 안엔 최첨단 의료 기기들이 번쩍거렸다. 그리고 쟁반 위에 놓인 선택지.

“자, 치료법을 선택하시죠.”

“닥터 헬기를 부르면, 2025년 현재가 아닌, 의료 인프라가 완벽하게 갖춰진 미래형 스마트 귀농 마을로 보내드립니다. 집집마다 AI 주치의가 있고, 아프면 5분 안에 드론 구급차가 날아와요. 자연은 즐기되, 문명의 혜택은 포기하지 않는 럭셔리 귀농 라이프죠.”

“진통제를 맞으면, 이 통증만 싹 없애드립니다. 그리고 당신의 귀농 로망을 '무적’으로 만들어드려요. 앞으로 20년 동안 절대 아프지 않은 '강철의 몸’을 드립니다. 병원? 필요 없어요. 산신령처럼 건강하게 사시는 겁니다.”

“구급차 대기를 선택하면 1시간 동안 이 고통을 생으로 참아야 합니다. 그리고 진지하게 고민하셔야죠. 다시 매연 가득한 도시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목숨 걸고 이 낭만을 지킬 것인가.”

태석은 닥터 헬기를 보았다. 스마트 귀농? 좋지. 하지만 그건 돈이 엄청 들겠지.
강철의 몸? 그것도 너무 허황된 꿈 같고.

하지만 지금 당장 너무 아팠다. 이대로 죽을 순 없었다.
그리고 솔직히... 도시의 편리함이 미치도록 그리웠다. 짜장면 배달시키면 10분 만에 오고, 편의점이 코앞에 있는 그 삶.
자연인? 개나 주라지. 사람 살고 봐야지.

‘나, 20년 동안 안 아프게 해 준다고? 그럼 병원 걱정 없이 이 산속에서 왕처럼 살 수 있잖아!’

“선생님.”

태석은 진통제를 가리켰다.

“나... 안 아프고 싶어. 이 좋은 공기 마시면서, 아픈 거 걱정 없이 천년만년 살고 싶어. 강철의 몸, 그거 줘요!”

“탁월한 선택입니다. 자연인이 되려면 몸부터 자연 그 자체가 되어야죠.”

의사가 주사를 꾹 놓았다.

순간, 뱃속을 뒤집어놓던 통증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온몸에 활력이 돌았다. 20대 때보다 더 힘이 솟는 기분이었다.

“와! 하나도 안 아파! 여보, 나 다 나았어!”


태석이 벌떡 일어났다. 의사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밖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구급차가 도착했다.
“환자분! 괜찮으세요?”
구급대원들이 뛰어들어왔지만, 태석은 장작을 패고 있었다.
“허허, 오시느라 고생하셨소. 내가 갑자기 멀쩡해졌네? 온 김에 고구마나 좀 드시고 가시오.”

그날 이후, 태석은 진짜 '자연인’이 되었다.
영하 20도 추위에도 반팔을 입고 다니고, 무거운 바위도 번쩍번쩍 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강원도 헐크’라고 불렀다.
병원? 갈 일이 없었다. 감기 한번 안 걸리니까.

태석은 마당 평상에 누워 쏟아지는 별을 보았다.
“이야, 좋다. 안 아프니까 이 산골이 천국이네.”
아내가 옆에서 웃었다.
“당신, 회춘했나 봐. 요즘 힘이 장사야.”

태석은 아내를 번쩍 안아 올렸다.
“여보, 우리 여기서 백 살까지 살자. 병원비 아껴서 맛있는 거나 실컷 해 먹으면서!”

도시로 돌아갈 고민? 싹 사라졌다.
건강이라는 치트키를 쓴 태석의 귀농 라이프는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그는 산을 향해 포효했다.
“야호! 나는 자연인이다!!”




[작가 노트]
이번 화는 은퇴 후 건강 염려증과 의료 접근성 문제를 강철의 몸이라는 판타지적 설정으로 해결했습니다. "아프지만 않으면 시골 살이가 천국일 텐데"라는 5060 귀농인들의 보편적인 소망을 실현해봤다고나 할까요. 가끔은 현실에서 살짝 거리를 둔 채 아예 아프지 않은 몸을 갖게 된다는 유쾌한 상상을 통해 귀농의 낭만을 극대화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죠?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