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서울 아파트 한 채가 내 인생의 성적표인가

시간의 다방 : 그레이네상스, 다시 피어나는 꽃

by 공감디렉터J


“평당 1억 돌파! 강남 불패 신화는 계속된다!”

부동산 뉴스 헤드라인이 번쩍였다.
최상우(58세) 씨는 베란다 창밖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경기도 외곽, 20년 된 30평 아파트. 이게 상우의 전 재산이다.
동창 모임에 나가면 늘 주눅이 든다.
“야, 나 이번에 반포 재건축 들어갔잖아. 분담금이 좀 세긴 한데...”
친구들의 대화 주제는 기승전’집값’이다. 서울에 똘똘한 한 채 가진 놈이 승리자, 나머지는 패배자.
평생 성실하게 회사 다니고, 아이들 잘 키웠다고 자부했는데, 부동산 성적표 앞에선 초라한 낙제생이 된 기분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아파트 단지를 걷는데, 상가 부동산 유리문에 붙은 전단지가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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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고 들어가자 벽면 가득 지도가 붙어 있었다. 서울 지도가 아니라, 상우의 인생 여정이 그려진 지도였다.
책상 앞엔 깐깐해 보이는 공인중개사가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최 사장님. 서울 진입하고 싶으시죠? '영끌’해서라도.”

중개사가 정곡을 찌르며 쟁반을 내밀었다. 아파트 등기권리증과 커피.

“자, 마지막 기회입니다.”

“등기를 받으면, 10년 전으로 돌아가게 해 드립니다. 무리해서라도 서울 아파트를 사세요. 대출? 걱정 마세요. 집값이 다 갚아줍니다. 10년 뒤 당신은 '벼락거지’가 아니라 자산 30억의 당당한 서울 시민이 될 겁니다.”

“전세를 살면, 집값 스트레스에서 해방시켜 드립니다. 집은 소유하는 게 아니라 사는 곳이라며 정신 승리하게 해 드리죠. 남들 돈 벌 때 배는 좀 아프겠지만.”

“그냥 두면... 당신은 지금 그 낡은 아파트에서 계속 살아야 합니다. 친구들 자랑 들으며 속 쓰리고, ‘내가 인생 헛살았나’ 자괴감도 들겠죠. 하지만...”

상우는 등기권리증을 집으려 했다. 30억. 그 돈이면 노후 걱정 끝이다. 아내한테 큰소리도 치고.
하지만 상우는 지도를 다시 보았다.
경기도 외곽 그 아파트. 그곳에서 아들은 밤늦게까지 공부해서 원하던 대학에 갔고, 아내는 텃밭을 가꾸며 웃었다.
주말이면 근처 산책로를 걷고, 저녁엔 온 가족이 모여 삼겹살을 구워 먹던 그 집.
서울 아파트를 사려고 대출금에 허덕였다면, 그 여유와 웃음은 없었을 것이다. 아내는 마트 캐셔 일을 더 오래 해야 했을 것이고, 아이들은 학원비 때문에 눈치를 봤을 것이다.

“사장님.”

상우는 권리증을 내려놓았다.

“30억... 크죠. 근데 내 지난 20년 추억이랑은 못 바꾸겠네요.”

“후회 안 하세요? 친구들은 떵떵거리는데.”

“부럽긴 하죠. 근데 그놈들 만나보면 맨날 세금 걱정, 상속세 걱정에 얼굴이 어둡더라고요. 나는 비록 집값은 안 올랐어도, 우리 가족 웃음소리는 상한가 쳤습니다.”

상우는 블랙커피를 들었다.

“내 집이 초라해 보여도, 거기서 우리 애들이 꿈을 꿨고, 내가 편히 쉬었어요. 그럼 된 거 아닙니까. 집이 내 인생의 성적표라면, 난 ‘행복’ 과목에선 만점입니다.”

상우는 커피를 마셨다.
구수한 숭늉 같은 맛이었다.

“멋지십니다. 행복 과목 만점이라... 그런 매물은 돈 주고도 못 사죠.”

중개사가 지도를 말아 상우에게 건넸다.
“이건 선물입니다. 사장님의 보물지도.”


다방을 나오자 밤공기가 상쾌했다.
상우는 아파트를 올려다보았다. 거실에 불이 켜져 있었다. 아내가 드라마를 보고 있겠지.
상우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현관문을 열면 들려올 “왔어?” 하는 목소리가, 그 어떤 한강 뷰 아파트보다 그를 행복하게 할 테니까.




[작가 노트]
대한민국 5060 세대의 가장 큰 박탈감 중 하나인 '부동산 양극화’. 주인공 상우는 '벼락거지’라는 자조 섞인 현실 속에서 과거로 돌아가 부를 축적할 기회를 얻지만, 결국 자신이 지켜온 소박한 가정의 행복을 선택합니다. "집값은 안 올랐어도 가족 웃음소리는 상한가". 자산 가치로만 인생을 평가하는 세태에 던지는 묵직한 반론입니다. 집의 진정한 의미는 '얼마나 비싼가’가 아니라 '얼마나 행복한가’에 있는 게 아닐까요?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