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작가의 <오디세이아 서울>
꽤나 오래전, 당시로서는 제법 흥미로운 SF 소설 같은 느낌의 표지를 갖고 출간된 책, 이문열 작가의 <오디세이아 서울>. ‘오디세이아’라는 말이 지금은 진부함을 넘어 오히려 생소할 정도로 오래된 단어지만, 어쨌든 이 소설은 내게 처음으로 '소설가의 눈'이란 과연 무엇일까 생각하게 한 작품이었다.
이 작품의 독특한 설정은 - 주인공이 다름 아닌 한 자루의 ‘만년필’이라는 점이었다 - 단숨에 나를 매료시켰다. 이렇듯 사물을 의인화하여 세상을 바라보는 가전체(假傳體) - 사물을 의인화하여 전기(傳記, 일대기) 형식으로 서술하는 문학 양식 - 소설의 기법은 신선한 충격과 함께 새로운 차원의 독서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낯선 시각과 가치관을 가진 외제 만년필(몽블랑)은 여러 주인의 손을 거치며 그들의 삶과 그들이 살아가는 시대를 섬세하게 관찰하고 기록한다. 가난한 문학청년의 손에서 고뇌를 함께하고, 성공한 사업가의 손에서는 부와 허영을, 권력가의 손에서는 음모와 타락을 목격하는 것이다.
이 만년필의 여정은 작품의 제목처럼, 온갖 풍파를 헤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오디세우스의 방랑을 연상시킨다. 만년필이 흘러 다니는 서울이라는 공간은 격렬한 산업화의 물결과 민주화에 대한 뜨거운 열망이 뒤섞이던 한국 사회의 생생한 모습 그 자체였다. 물질적 풍요 뒤에 숨겨진 정신적 공허함, 민주주의를 향한 갈망과 그 과정에서 겪었던 혼란 등이 만년필의 담담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소설은 단순한 사회 풍자를 넘어,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인간성이 어떻게 변화하고 소외되는지를 예리하게 포착하여 당시 큰 울림을 주었다.
이문열 작가의 작품을 이야기할 때면 그의 보수적인 가치관이 종종 언급되지만, 내가 주목하는 것은 그만의 능란한 말솜씨와 날카로운 촌철살인 어법, 독창적인 문체와 빼어난 서사 구성 능력이다.
그의 문장은 견고하고 무게감이 있으며, 때로는 깊이 있는 지성을 드러내 마치 현학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사람의 아들>에서 주인공 '민요섭'의 내면을 묘사하며 보여준 인간의 실존과 종교적 구원에 대한 깊은 탐구라든가,
"그는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인간은 왜 고통받는가, 왜 죽어야 하는가, 그리고 이 모든 부조리 속에서 신은 과연 존재하는가. 그의 사고는 때로는 날카로운 칼날처럼 현실을 파고들었고, 때로는 끝없이 펼쳐진 늪처럼 깊고 어두웠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권력의 본질을 우화적으로 그려낸 간결하면서도 힘 있는 서술 방식과 엄석대라는 절대적인 존재 앞에서 무력한 아이들의 모습을 묘사하는 부분,
"그 애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애의 눈빛은 마치 우리들의 마음속까지 꿰뚫어 보는 듯했고, 조금이라도 반항하는 기색을 보이면 어김없이 보복이 따랐다. 우리는 그저 숨죽인 채 그 애의 손짓 하나하나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김삿갓의 삶을 그린 <시인>에서는 유려하면서도 애잔한 문장으로 한 예술가의 삶과 방랑을 그려내는데, 이는 폭넓은 지식과 고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술잔에 담긴 것은 술이 아니라, 세상의 시름이었다. 그는 달빛 아래 홀로 앉아 끝없이 술잔을 기울였다. 그의 눈빛은 밤하늘의 별처럼 희미하게 빛났지만, 그 속에는 깊은 슬픔과 덧없는 세상에 대한 탄식이 담겨 있었다. 그의 시는 세상에 울려 퍼지지 못했지만, 그의 삶 자체가 한 편의 서글픈 시였다."
그의 문장은 쉽게 읽히지만, 되새길수록 새로운 의미가 떠오르는 다층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동시대 다른 작가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이문열 작가만의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이문열 작가와 같은 시대를 빛낸 박완서, 조정래, 황석영과 같은 원로 작가들의 글과 오늘날 젊은 작가들의 글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느껴진다. 원로 작가들의 작품에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개인의 삶이 어떻게 투영되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 민족이나 공동체와 같은 굵직한 담론에 대한 고민이 짙게 녹아 있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문장은 비교적 정갈하고 전통적인 서사 구조를 따르며, 문장 하나하나에 깊이가 느껴진다.
반면, 현대 작가들의 글은 더욱 개인적이고 단편적인 감수성, 일상적인 소재, 다채로운 장르적 시도가 눈에 띈다. 문체 또한 훨씬 자유롭고 감각적이며, 때로는 인터넷 용어나 비속어까지 과감하게 사용하여 형식의 틀을 깨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는 시대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흐름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로 작가들의 글이 오늘날의 독자들과 예비 작가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여전히 강력하다. 첫째는 언어에 대한 깊은 존중과 꾸준한 문장 연마이다. 그들의 글에서는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함부로 쓰지 않으려는 치열한 노력이 느껴진다. 이는 글쓰기의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가치일 것이다.
둘째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력이다.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새로운 의미를 끌어내는 능력은 많은 영감을 준다.
마지막으로, 끈기 있게 하나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서사의 힘이다. 짧은 호흡의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 묵직한 주제를 긴 호흡으로 풀어내는 원로 작가들의 작품은 이야기 본연의 힘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준다.
<오디세이아 서울> 속 만년필처럼, 뛰어난 작가는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자 그 시대를 기록하는 사람이다.
원로 작가님들의 글을 통해 우리는 지나온 시대를 배우고, 현재를 깊이 생각하며, 글쓰기의 깊이를 더할 수 있을 것이다.
Edge는 '가장자리', '날카로움' 등의 의미로 일상 속 평범함에서 참신하고 색다른 생각이나 시각을 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