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1] 어느 은퇴자의 은밀한 취미생활
지직, 지지직~~!
오실로스코프의 녹색 파형이 요동치며 기분 나쁜 소음을 뱉어냈다. 최말동 노인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을 새도 없이 납땜 인두를 정교하게 움직였다. 황 노인의 폴더폰 내부에 있는 송수신 칩에 미세한 구리선을 연결하고, 낡은 주파수 증폭기에 물렸다.
“다 됐다.”
최 노인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뒤로 물러났다.
“어르신, 수고하셨습니다.”
기철은 헐렁한 낚시 조끼 안주머니에서 검은색 이어폰을 꺼내 한쪽 귀에 꽂고, 폰의 전원을 켰다.
“이거 켜자마자 놈들 쪽에서 역추적 들어올 텐데, 괜찮겠나?”
최 노인이 불안한 듯 물었다. 기철은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상관없습니다. 놈들이 이쪽 신호를 잡기 전에, 제가 먼저 놈들의 콜센터 위치를 특정할 테니까요. 30초면 됩니다.”
기철은 노트북을 펼쳐 최 노인이 증폭시킨 아날로그 신호를 시각화하는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과거 중동 분쟁 지역에서 탈레반의 무전 기지국을 박살 낼 때 쓰던 구식 삼각측량 기법이었다.
디지털 시대의 첨단 암호화 기술도, 결국 물리적인 전파를 송출하는 중계기를 거쳐야만 작동한다.
최 노인의 아날로그 증폭기가 그 미세한 ‘전파의 꼬리’를 물어뜯는 역할을 한 것이다.
삐빅, 삐비비빅--
노트북 화면에 붉은 점 세 개가 떠올랐다. 기철의 눈이 빠르게 좌표를 읽어 내려갔다.
“서울 외곽... 경기도 외곽의 폐공장 밀집 지역이군요. 놈들의 보이스피싱 콜센터가 국내에 있었습니다.”
해외에 거점을 둔 줄 알았던 보이스피싱 조직이, 국내 노인들의 돈을 쉽게 수거하기 위해 경기도 외곽에 비밀 중계소를 차려놓은 것이다. 황 노인을 속였던 딥페이크 음성도, 최 노인의 돈을 빼앗아간 떴다방 ‘청춘 만세’ 놈들의 연락망도 모두 이 콜센터를 거치고 있었다.
“어르신, 잠시만 쉬고 계십시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기철이 노트북을 접고 일어서려 할 때였다.
쿵쿵쿵!
전파사 셔터 밖에서 거친 두드림 소리가 들렸다.
“최 어르신! 계십니까? 지구대 박진우 순경입니다!”
기철과 최 노인은 흠칫 놀라 서로를 마주 보았다. 기철이 재빨리 노트북과 증폭기를 책상 밑으로 숨기고, 최 노인이 헛기침을 하며 셔터를 반쯤 올렸다.
“뭐꼬, 이 밤중에. 내 자려던 참이다.”
“아, 어르신. 몸은 좀 어떠십니까? 낮에 그 사기꾼 놈들 때문에 걱정이 돼서 순찰 도는 김에 들렀습니다.”
진우가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안으로 들어서려다, 어둠 속에 서 있는 기철을 발견하고 눈을 둥그렇게 떴다.
“어? 장 사장님? 여기서 뭐 하십니까?”
“아, 우리 최 어르신 퇴원 기념으로 막걸리나 한잔 올리려고 왔지.”
기철이 능청스럽게 빈 막걸리병을 흔들어 보였다. 하지만 진우의 눈빛은 낮의 순박했던 신입 경찰의 그것이 아니었다. 그의 시선이 기철의 헐렁한 조끼 안주머니 쪽으로, 그리고 책상 밑으로 삐져나온 굵은 전선 더미로 향했다.
“장 사장님.”
진우의 목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
“낮에 신협에서 황 어르신 보이스피싱 막으셨을 때, 놈들하고 통화하는 거 제가 밖에서 다 들었습니다. 사장님 폰에 어르신 가족들 신상 정보가 다 있습니까? 어떻게 그렇게 줄줄이 꿰고 계셨습니까?”
기철의 입가에 맴돌던 미소가 희미해졌다.
사냥개의 냄새를 풋내기 순경이 맡기 시작했다.
“시장 통에서 십 년 넘게 명함 파고 달력 돌리다 보면 다 알게 되는 겁니다. 박 순경님도 짬이 차면 알게 되실 겁니다.”
기철이 여유롭게 받아쳤지만, 진우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리고 방금... 제가 밖에서 들었는데. ‘콜센터’라뇨? 사장님, 혹시 혼자서 놈들을 추적하고 계신 겁니까?”
경찰의 정식 수사가 지지부진하자, 민간인이 불법적인 장비를 동원해 사적 제재를 가하려 한다고 의심하는 것이 분명했다. 진우의 손이 반사적으로 허리춤의 수갑 쪽으로 향했다.
기철은 천천히 진우에게 다가갔다.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박 순경님.”
기철의 목소리는 한없이 낮고 차가웠다. 평범한 인쇄소 사장의 서글서글함은 완전히 증발하고, 적의 숨통을 조이던 노련한 늑대의 눈빛이 번뜩였다.
“경찰 매뉴얼대로 압수수색 영장 받고, IP 추적 의뢰해서 한 달 뒤에 빈 콜센터 덮치면. 우리 최 어르신이 뺏긴 이천만 원, 찾을 수 있습니까?”
“그건... 절차가...”
진우가 말문이 막힌 듯 더듬거렸다.
“절차 따지다가 노인네들 피 말라 죽는 거, 낮에 응급실에서 똑똑히 보셨잖습니까. 박 순경님은 매뉴얼 지키며 밤잠 편히 주무십시오. 저는 제 이웃들 돈 찾으러 가야겠습니다.”
기철이 진우의 어깨를 가볍게 밀치고 밖으로 나섰다.
진우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기철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 차마 그를 막아 세우지 못했다.
기철의 뒷모습에서 내뿜어지는 압도적인 위압감과 살기, 그리고 공권력이 해결하지 못한 부채 의식이 진우의 발목을 붙잡았다.
어둠이 짙게 깔린 무지개 시장 골목.
사냥개가 목줄을 끊고 놈들의 은신처를 향해 맹렬하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