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1] 어느 은퇴자의 은밀한 취미생활
쿵, 짝, 쿵, 짝.
지하에 자리 잡은 ‘청춘 만세’ 홍보관의 철문 너머로 심장을 때리는 묵직한 베이스음이 흘러나왔다.
환풍기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퀴퀴한 지하실은 순식간에 수십 명의 노인들이 뿜어내는 열기와 파스 냄새, 그리고 싸구려 방향제 향으로 뒤덮였다.
“어머님들! 우리 아들딸들이 전화는 자주 합니까? 명절에 용돈은 두둑하게 주고요?”
무대 위, 번지르르한 은갈치색 양복을 입은 ‘박 실장’이라는 사내가 마이크를 잡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닦아내며 무릎까지 꿇는 그의 모습에, 앞줄에 앉은 할머니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아이고, 바빠서 얼굴 보기도 힘들어. 전화는 무슨...”
시장 귀퉁이에서 평생 나물을 팔아 온 이 할머니가 굽은 허리를 두드리며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그 미세한 균열을 박 실장은 놓치지 않았다. 독사를 연상케 하는 그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는 무대에서 훌쩍 뛰어내려 이 할머니의 거칠고 주름진 두 손을 덥석 부여잡았다.
“어머님! 자식 키워봐야 다 소용없습니다! 이제는 내 몸, 내가 챙겨야 안 되겠습니까? 뼈 빠지게 고생만 하셨는데, 남은 인생 안 아프고 사셔야죠! 그래서 저희가 우리 어머님들 모시려고 이 비싼 산삼 배양액을 원가도 안 되는 가격에 가져온 거 아닙니까!”
박 실장의 신호와 함께, 입구에서 계란을 나눠주던 건장한 청년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노인들의 어깨를 주무르고, “어머니, 아버지”라며 귓가에 달콤한 속삭임을 불어넣었다. 고립과 외로움에 굶주려 있던 노인들의 경계심이 허물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공짜 계란 한 판과 휴지 묶음은 완벽한 미끼였다. 세상에 대가 없는 호의는 없다는 진리를, 노인들은 눈앞의 화려한 조명과 가짜 정(情)에 취해 잊어가고 있었다.
같은 시각.
‘원조 소머리국밥’의 강옥분은 펄펄 끓는 가마솥 앞에서 뽀얀 육수를 국자로 휘젓고 있었다. 매캐한 김 사이로 그녀의 매서운 눈초리가 시장 남쪽 입구를 향했다.
지하 홍보관에서 쏟아져 나오는 노인들의 양손에는 두루마리 휴지며 플라스틱 바가지 따위가 들려 있었다. 하지만 옥분의 시선이 머문 곳은 그들의 손이 아니었다. 노인들의 상기된 얼굴, 그리고 넋이 나간 듯 멍한 눈빛.
“미친놈들, 또 생사람 잡네.”
옥분은 쯧쯧 혀를 차며 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그녀는 쟁반에 수육 한 접시와 국밥 한 그릇을 넉넉히 담아 맞은편 ‘제일 인쇄·간판’으로 향했다.
끼릭, 끼리릭.
기철은 드라이버를 쥔 채 인쇄기 롤러의 유격을 조정하고 있었다. 손등에 튄 검은 잉크가 그의 구릿빛 피부와 묘하게 어우러졌다.
“장 사장, 밥 묵고 해라.”
“아, 누님. 마침 출출하던 참이었는데, 감사합니다.”
기철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드라이버를 내려놓았다. 옥분은 쟁반을 책상 한편에 밀어 넣고는, 주변을 쓱 한 번 둘러본 뒤 목소리를 낮췄다.
“저 짝에 새로 들어온 놈들, 이기 보통 놈들이 아이다.”
“홍보관 말입니까?”
기철은 숟가락을 들며 무심하게 대꾸했다.
“그래. 방금 나물 파는 이 할매가 내한테 와서 돈 2백만 원만 빌려달라 카더라. 평생 쌈짓돈 아끼던 노인네가, 무릎 연골에 직빵이라는 무슨 이상한 녹용 진액을 산다면서 적금 깬다고 난리도 아이다. 그 놈아들 눈깔이 뱀장어 맨쿠로 미끌미끌한 게, 영 찝찝해 죽겠네.”
옥분의 말에 기철의 숟가락질이 멈칫했다.
“이 할머니가요?”
“어. 혼자 사는 노인네들만 귀신같이 골라가 찰거머리처럼 들러붙는다. 최말동 그 꼬장꼬장한 영감탱이도 휴지 쪼가리 하나 받아 들고 헤벌쭉 해가 나오더라니까. 경찰에 신고를 하든가 해야지, 원.”
기철은 조용히 국물을 삼켰다. 뚝배기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 뒤로, 그의 눈빛은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과거, 그가 중동의 테러 조직을 추적할 때 썼던 ‘고립 및 세뇌’ 전술의 마이너 카피 버전이었다. 타겟을 외부와 차단된 공간에 가두고, 극도의 친밀감과 공포심을 교차로 주입해 판단력을 흐리게 만드는 고전적이고 악랄한 수법.
“경찰은 소용없을 겁니다, 누님.”
“와? 사기 치는 거 뻔히 아는데!”
“저놈들, 서류상으로는 합법적인 방문판매업으로 등록해 놨을 겁니다. 노인들이 제 발로 걸어 들어가서 자필로 계약서에 사인하게 만들거든요. 경찰이 떠도 ‘강매가 아니라 자발적 구매’라고 오리발 내밀면 증명하기 어렵습니다.”
수십 년간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법의 사각지대에서 싸워 온 기철이었다. 시스템의 한계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옥분은 답답한 듯 가슴을 쳤다.
“그라믄 저 불쌍한 노인네들 돈 다 뜯기는 거 눈 뜨고 보란 말이가!”
기철은 젓가락을 가지런히 내려놓았다. 헐렁한 낚시 조끼 안쪽에서, 요원 시절부터 길들여진 서늘한 맥박이 뛰기 시작했다.
“제가 한 번 둘러보겠습니다.”
“니가? 간판장이가 거길 와 가노?”
“인쇄소에 이면지가 좀 남아서요. 달력이라도 좀 돌리면서 인사나 해볼까 합니다. 이웃끼리 상도덕이 있지 않습니까.”
기철의 입가에는 여전히 사람 좋은 웃음이 걸려 있었지만, 돋보기 안경 너머로 번뜩이는 안광은 굶주린 늑대의 그것과 같았다. 무지개 시장은 그의 구역이었다.
이 낡고 따뜻한 골목의 평화를 위협하는 자들에게 베풀 자비는, 전직 블랙 요원의 사전에 존재하지 않았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