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헐렁한 작업복의 사내

[시즌 1] 어느 은퇴자의 은밀한 취미생활

by 공감디렉터J


끼기기긱--!

녹슨 철제 셔터가 말려 올라가는 쇳소리가 무지개 시장의 새벽 공기를 갈랐다.

장기철은 입에 물고 있던 종이컵에서 미지근한 믹스커피를 한 모금 삼킨 뒤, 어깨를 가볍게 풀었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 하지만 두꺼운 철제 셔터를 단숨에 밀어 올리는 그의 팔뚝에는 군더더기라곤 없었다. 헐렁한 베이지색 면바지와 빛바랜 낚시 조끼는 그의 다부진 체격을 교묘하게 가려주는 훌륭한 위장막이었다.

그는 습관적으로 소매를 끌어내려 왼팔 안쪽에 길게 패인 자상을 가렸다. 20년 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의 뒷골목에서 스페츠나츠 출신의 암살자와 얽혔을 때 남은 훈장이었다.

“사장님, 셔터 올리는 소리 들으니 인자 진짜 아침이네.”

맞은편 '원조 소머리국밥’의 강옥분 할머니가 대파가 가득 담긴 다라이를 옆에 끼고 걸어오며 알은체를 했다. 기철은 특유의 서글서글한 눈웃음을 지으며 허리를 숙였다.

“아이고, 누님. 오늘도 1등이시네. 가마솥 불은 잘 붙었습니까?”
“말도 마라. 장작이 눅눅해가 속을 썩인다 아이가. 그나저나 저 짝에 새로 들어온 놈들은 아침 댓바람부터 와 저리 시끄럽노?”

옥분의 턱끝이 향한 곳은 시장 남쪽 입구였다. 기철의 눈매가 순간 미세하게 좁아졌다.

'제일 인쇄·간판’이라는 낡은 간판 아래 선 기철의 코끝으로, 짙은 잉크 냄새와 참기름 냄새, 그리고 이질적인 싸구려 향수 냄새가 섞여 들어왔다.

“아버님, 어머님! 오늘 오픈했습니다! 계란 한 판 무조건 공짜! 휴지도 드려요! 일단 들어와서 노래나 한 곡 듣고 가세요!”

번쩍이는 핫핑크색 현수막.
청춘 만세 홍보관 - 무지개점 그랜드 오픈!


싸구려 양복을 쫙 빼입고 포마드를 잔뜩 바른 젊은 청년 서너 명이 시장 입구에서 전단지와 계란을 나눠주고 있었다. 경쾌한 트로트 음악이 시장통을 쩌렁쩌렁 울렸다. 이른 아침 시장을 찾은 백발의 노인들이 '공짜’라는 말에 홀린 듯 그들 주변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기철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그 광경을 건조하게 응시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넉살 좋은 청년들의 개업 행사로 보이겠지만, 기철의 망막에 맺힌 정보는 달랐다.

‘시선 처리, 타겟 분석, 퇴로 확보.’

계란을 쥐여주며 할머니들의 손을 덥석덥석 잡는 청년들의 눈빛은 결코 웃고 있지 않았다. 그들의 시선은 노인들의 옷차림, 차고 있는 시계의 낡은 정도, 걸음걸이에서 묻어나는 인지 능력을 순식간에 스캔하고 있었다. 손등과 관절에 박힌 굳은살은 무거운 짐을 날라서 생긴 것이 아니었다. 사람의 뼈를 수없이 때려본 자들 특유의 흔적.

전형적인 '떴다방’이었다.

가족과 단절되어 외로움에 취약한 노인들을 좁은 공간에 몰아넣고, 노래와 춤으로 혼을 쏙 빼놓은 뒤, 정(情)을 무기 삼아 수백만 원짜리 가짜 약이나 건강기능식품을 강매하는 점조직 사기단.

기철은 이가 썩어 들어가는 듯한 불쾌감을 느꼈다.
국가정보원 블랙 요원으로 전 세계의 분쟁 지역을 떠돌며 테러리스트와 마피아들을 상대했던 그였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보다, 저렇게 웃는 낯으로 힘없는 노인들의 피와 살을 발라먹는 기생충 같은 놈들이 역겨웠다.

“아이고, 우리 최 어르신! 오늘따라 넥타이가 억수로 멋지십니다! 이리 와보이소!”

청년 중 가장 덩치가 큰 놈이 시장 구석에서 '형제 전파사’를 운영하는 최말동 할아버지의 팔짱을 강제로 끼웠다. 꼬장꼬장한 성격의 최 노인이 버럭 화를 내려 했지만, 청년은 능구렁이처럼 웃으며 최 노인의 손에 두루마리 휴지 세트를 안겼다. 결국 최 노인도 등 떠밀리듯 화려한 풍선이 장식된 지하실 입구로 빨려 들어갔다.

“세상에 공짜가 어딨다고... 노인네들이 쯧쯧.”
옥분이 혀를 차며 국밥집으로 돌아갔다.

기철은 말없이 인쇄소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두컴컴한 인쇄소 구석, 수십 년 된 옵셋 인쇄기가 거친 숨을 토해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국가를 위해 손에 피를 묻히던 과거를 버렸다. 평범한 이웃으로 남고 싶었고, 평화로운 은퇴를 원했다. 하지만 사냥개는 피 냄새를 잊지 못하는 법이다.

기철은 잉크가 묻은 면장갑을 천천히 꼈다.
헐렁한 작업복 아래,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근육들이 서늘한 긴장감과 함께 수축하고 있었다.

평화롭던 무지개 시장에 이리 떼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누구의 구역에 발을 들였는지 아직 모르고 있었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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