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보이지 않는 목소리

[시즌 1] 어느 은퇴자의 은밀한 취미생활

by 공감디렉터J


따르릉, 따르릉.

낡은 다이얼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렸다. 시장 뒤편 좁은 골목, 리어카에 폐지를 싣고 힘겹게 비탈길을 오르던 황 노인이 걸음을 멈췄다.

“아이고, 숨차라. 뉘신고.”

그는 구겨진 바지 주머니에서 때 묻은 폴더폰을 꺼냈다. 발신자 제한 번호. 눈이 침침해 액정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황 노인은 무심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아, 아빠... 나야, 진호...”)

순간, 황 노인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 떨리고 겁에 질린 아들의 음성이었다. 지방에서 작은 중소기업에 다니는 외아들. 명절에도 바빠서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아들이었다.

“진호야? 니 와 그라노? 무슨 일이고!”
(“아빠, 나 지금... 나 지금 큰일 났어. 거래처 놈들이랑 시비가 붙었는데, 실수로... 실수로 사람을 다치게 했어. 합의금 안 주면 당장 구속된대...”)

“뭐라꼬? 구속? 사람을 우째 다치게 했길래!”

황 노인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폐지를 가득 실은 리어카의 손잡이를 쥔 손에 식은땀이 배어났다.

(“아빠, 나 감옥 가기 싫어. 우리 애들 어떡해... 돈 삼천만 원만... 아니, 이천만 원이라도 급하게 좀 보내주면 안 돼? 나 진짜 미치겠어...”)

울먹이는 아들의 목소리 뒤로 험악한 욕설과 물건 부서지는 소리가 리얼하게 섞여 들었다. 황 노인의 머릿속은 하얗게 변했다. 이성적인 판단은 불가능했다. 아들이 감옥에 간다는 공포, 평생 뒷바라지 한 번 제대로 못 해준 죄책감이 그의 남은 이성을 갉아먹었다.

“알았다! 알았다, 진호야! 애비가 돈 부쳐주꾸마. 은행이 어딨노, 어딨어!”


황 노인은 리어카를 내팽개친 채 비틀거리며 시장 통로로 뛰어갔다. 그의 품에는 평생 폐지를 주워 모은, 죽을 때 수의나 해 입으려고 꼬깃꼬깃 모아둔 통장 하나가 품속에 있었다.

“장 사장, 저거 봐라. 황 영감탱이, 또 정신 줄 놨네.”

‘원조 소머리국밥’ 앞 평상에 걸터앉아 파를 다듬던 강옥분이 턱 끝으로 시장 입구를 가리켰다. 인쇄소 앞에서 간판 테두리를 닦고 있던 기철이 고개를 들었다.

황 노인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한 손에는 폴더폰을 귀에 댄 채 다른 손으로는 가슴팍을 움켜쥐고 신협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헐떡이는 숨소리가 기철이 있는 곳까지 들릴 정도였다.

기철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황 노인의 비정상적인 동공 확장, 불안정한 걸음걸이, 수화기 너머의 누군가에게 완전히 통제당하고 있는 듯한 복종적인 태도.

‘보이스피싱이군.’

전직 블랙 요원의 직감이 경고음을 울렸다. 기철은 쥐고 있던 걸레를 툭 던지고, 헐렁한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느릿느릿, 하지만 보폭을 넓혀 황 노인의 뒤를 따랐다.


“아이고, 황 어르신! 와 그리 뛰어가십니까!”
마침 순찰을 돌던 앳된 얼굴의 박진우 순경이 황 노인을 불러 세웠다.

“비키라! 우리 진호가, 진호가 감옥 간단다! 돈 부쳐야 돼!”
황 노인은 진우를 거칠게 밀쳐내며 소리쳤다.

“진호 형님이요? 어르신, 잠깐만요! 전화 이리 줘보세요!”
진우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황 노인의 폴더폰을 빼앗으려 실랑이를 벌였다.

“아이다! 끊으면 우리 아들 죽인단다! 내 놔라!”
황 노인이 필사적으로 폰을 움켜쥐고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하기 시작했다. 시장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들었다.

기철은 무리 뒤편에서 상황을 주시했다.


‘딥페이크(Deepfake) 음성 변조.’

최근 들어 시니어들을 타겟으로 급증하고 있는 신종 수법이었다. 가족의 목소리를 AI로 완벽하게 복제하여 위급 상황을 연출하는 악랄한 방식. 황 노인처럼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고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노인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진우가 당황하며 무전기를 꺼내 드는 사이, 황 노인은 기어코 신협 문을 밀치고 들어갔다. 기철은 혀를 찼다.

경찰이 개입하면 보이스피싱 조직은 대포폰을 끄고 잠적해 버린다. 돈은 이미 대포통장을 통해 세탁되어 해외로 빠져나간 뒤일 것이다. 진우 같은 풋내기 순경이 매뉴얼대로 대응해 봤자 꼬리 자르기로 끝날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기철은 인파를 뚫고 조용히 신협 안으로 들어섰다.
황 노인이 창구 직원에게 통장을 내밀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이거... 이거 다 빼주소. 빨리!”
“어르신, 이 큰돈을 갑자기 현금으로 찾으시면... 혹시 경찰이나 검찰에서 전화 받으셨어요?”
직원이 매뉴얼대로 묻자, 수화기 너머의 놈이 눈치를 챘을까 황 노인이 더욱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아니다! 내 돈 내가 찾는다는데 와 지랄이고! 빨리 내놔라!”

직원이 당황하여 보안 요원을 부르려는 찰나.
기철이 황 노인의 등 뒤로 소리 없이 다가갔다. 그의 커다란 손이 황 노인의 마른 어깨를 다정하게, 그러나 묵직하게 감싸 쥐었다.

“어르신.”

황 노인이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사람 좋은 서글서글한 눈웃음을 짓는 인쇄소 장 사장이었다.

“장 사장... 와 이라노. 내 지금 바쁘다.”

기철은 황 노인의 귓가에 입을 바짝 댔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의 넉살 좋은 동네 아저씨의 톤이 아닌, 뼛속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낮고 서늘한 음성으로 속삭였다.

“그 전화 끊으십시오, 어르신. 진호 아닙니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