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오피스 : 체스판 위에 서다

Part2. 보이지 않는 음모 2부

by 공감디렉터J


정혜인의 절망은 단단한 벽에 부딪혔다.

남편의 죽음 이후, 뉴런 제약은 법무팀을 통해 전달되는 사무적인 서신 외에는 모든 소통을 차단했다.

철옹성.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남편이 남긴 불완전한 단서들을 곱씹으며 무력감에 잠기는 것뿐이었다.


그 무렵,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바이오로고스 AG 본사 이사회 회의실에는 차가운 긴장감이 감돌았다.

안건은 단 하나, ‘뉴런 제약 리스크 평가 및 대응 전략 수립’.

뉴런 제약의 비정상적인 주가 상승과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R&D 파이프라인은 월스트리트의 주요 투자 은행과 경쟁사들에게 경이의 대상이자 동시에 거대한 의혹 덩어리였다.

특히 바이오로고스와 뉴런 제약 양쪽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한 글로벌 투자사 ‘아레스 캐피털(Ares Capital)’의 압박이 거셌다. 그들은 뉴런 제약이 혁신의 아이콘인지, 아니면 전례 없는 규모의 사기극인지 확인해야 했다.

아레스 캐피털은 바이오로고스 이사회에 ‘기술 제휴 타당성 검토’라는 명분을 내세워 뉴런 제약의 내부를 들여다볼 것을 강력하게 ‘권고’했다. 사실상의 명령이었다.


이사회는 고심 끝에 최적의 카드를 골랐다. 신경약리학과 계산생물학 분야에서 명성이 높은 다니엘 김.

MIT 박사 출신의 젊은 팀장이자, 유창한 한국어 구사 능력까지 갖춘 그는 이 위험한 임무를 위한 완벽한 인물이었다. 이사회는 다니엘에게 ‘뉴런 제약의 AI 신약 개발 플랫폼 ‘아테나’의 기술 실사 및 파트너십 잠재력 평가’라는 공식 임무를 부여했다.

그의 진짜 목적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니엘은 담담한 표정으로, 커리어의 중대한 기회를 잡은 야심 찬 연구원의 역할을 완벽하게 연기하며 임무를 수락했다.


한편, 서울 뉴런 제약의 펜트하우스 집무실에서 강태준은 바이오로고스로부터 온 공식 서신을 읽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 뱀처럼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기술 실사라... 사자들이 피 냄새를 맡았군.”


그는 즉시 핵심 측근들을 소집했다. 회의실의 공기는 얼음장 같았다.

강태준은 파견팀의 리더, ‘다니엘 김’의 프로필을 스크린에 띄웠다.

MIT, 신경약리학, 계산생물학. 완벽한 스펙이었다.

그는 다니엘과 김민준의 관계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에게 다니엘은 그저 자신의 성역을 침범하려는, 가장 예리하고 성가신 외부인일 뿐이었다.

“그들이 보려는 것을 보여준다. 단, 우리가 보여주고 싶은 방식으로.”


강태준의 음모는 이중으로 설계되었다.

첫째, ‘완벽한 미끼’. 그는 ‘프로젝트 아테나’라는 이름의 가짜 AI 신약 개발 플랫폼을 준비시켰다.

수년간 축적된 성공 데이터만을 입력해, 마치 AI가 스스로 후보 물질을 발굴하고 임상 성공률을 99%까지 예측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 화려한 쇼였다.

다니엘 김 같은 전문가를 속이기 위해, 그는 수십 명의 연구원들을 동원해 예상 질문에 대한 스크립트와 조작된 데이터를 밤새워 만들게 했다.

둘째, ‘보이지 않는 조종’. 이것이 그의 진짜 계획이었다. 그는 보안팀장에게 명령했다.

“파견팀이 머무를 게스트 플로어와 지정된 미팅룸의 HVAC 시스템에 ‘환대 프로토콜(Protocol: Hospitality)’을 적용한다. 목표는 다니엘 김. 자각할 수 없는 수준의 엔도르핀과 도파민 전구체를 미세 분사해. 그의 뇌가 ‘아테나’를 볼 때마다 경외감과 지적 흥분을 느끼도록 설계해. 우리는 그의 눈을 속이는 게 아니야. 그의 ‘판단’ 자체를 조작하는 거다.”


강태준은 이번 파견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삼기로 했다.

세계적인 전문가 다니엘 김으로부터 ‘뉴런 제약의 기술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혁신적’이라는 보고서를 받아내, 모든 의혹을 잠재우고 주가를 한 단계 더 도약시킬 계획이었다.

그는 자신의 통제력에 대한 절대적인 자신감에 차 있었다.


며칠 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다니엘은 서울의 습한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그는 친구의 복수를 위해 적진의 심장부로 향하는 스파이였다.

뉴런 제약의 거대한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그는 미세한 이질감을 느꼈다.

지나치게 쾌적한 공기, 인공적인 평온함,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듯한 감시 카메라의 차가운 렌즈.

그는 아직 알지 못했다. 자신이 단순히 사자의 굴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자신만을 위해 특별히 설계된 보이지 않는 감옥에 스스로 걸어 들어왔다는 사실을.

그가 앞으로 마실 공기 한 모금, 보게 될 데이터 하나하나가 그를 옭아맬 가장 정교한 무기라는 것을.

체스판의 말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