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 보이지 않는 음모 3부
다니엘의 뉴런 제약 파견 근무가 2주째에 접어들었다.
그는 완벽한 컨설턴트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매일 아침, 그는 건물을 감도는 인공적인 평온함에 익숙해지려 애썼다.
연구원들은 기계처럼 정밀하게 움직였고, 그들의 얼굴에는 극단적인 열정과 무기력만이 존재할 뿐, 인간적인 고뇌나 피로감은 거세되어 있었다.
다니엘 자신도 그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어느 날 오후, 복잡한 약물 동력학 데이터를 검토하던 중, 그는 갑자기 찾아온 비현실적인 희열감에 소름이 돋았다. 머릿속이 수정처럼 맑아지며, 평소라면 몇 시간은 걸렸을 분석이 단 몇 분 만에 끝나는 경이로운 지적(知的) 쾌감. 그러나 그것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외부에서 주입된, 설계된 감각이었다.
친구 민준의 죽음에서 비롯된 슬픔과 분노마저 희미하게 마모되는 것을 느끼자, 그는 공포에 휩싸였다.
그 순간, 손목시계형 분석기가 미세하게 진동했다.
디스플레이에는 그가 위치한 섹터에만 집중되는 7.83Hz의 극저주파 펄스가 포착되었다.
강태준이 그를 ‘테스트’하고 있는 것이다.
다니엘은 화장실로 가 미리 준비해 온 초소형 캡슐을 삼켰다.
뇌신경 수용체에 작용하는 일시적인 ‘경쟁적 저해제(Competitive Inhibitor)’였다.
잠시 후, 인위적인 행복감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그의 본래 감각이 돌아왔다.
그는 거울 속 자신의 차가운 눈을 보며 중얼거렸다.
‘체스판에 오른 걸 환영한다, 강태준’
다음 날, 다니엘은 강태준에게 공식 미팅을 요청했다.
안건은 ‘연구동 내부 환경의 미세 전자기장 간섭이 R&D 데이터에 미치는 잠재적 오염 가능성에 대한 보고’였다. 그것은 명백한 선전포고였다.
강태준은 자신의 통제실, ‘성소(Sanctuary)’라 불리는 곳으로 다니엘을 직접 안내했다.
사방이 거대한 스크린으로 둘러싸인, 마치 우주선 함교 같은 공간이었다. 스크린에는 수백 명의 직원들에게서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뇌파, 심박, 호르몬 수치가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흥미로운 보고서더군요, 다니엘 박사” 강태준은 미동도 없이 스크린을 응시하며 말했다.
“하지만 박사님이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은 그게 아니었을 텐데요”
다니엘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7.83Hz, 지구 고유의 주파수인 슈만 공명(Schumann Resonance) 대역이죠. 뇌에 가장 자연스럽게 동조되지만, 역으로 가장 강력한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이 주파수로 공기 중에 부유하는 특정 나노-리포솜의 혈뇌장벽 투과율을 극대화시킨다. 참으로 우아한 방식입니다, 강 이사님”
정적이 흘렀다. 강태준은 천천히 몸을 돌려 다니엘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놀라움이 아닌, 마침내 대등한 상대를 만난 지적 희열이 번뜩였다. 그는 마치 지휘자가 연주를 시작하듯 손을 들어 스크린을 가리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그림을 보고 아름답다고만 말하지, 물감의 성분이나 캔버스의 재질까지 읽어내진 못합니다. 박사님은 제 그림을 이해한 최초의 감상자입니다. 그러니, 기꺼이 보여드리죠. ‘프로젝트 신시아’의 진정한 위대함을”
순간, 중앙 스크린에 김민준 박사의 생체 데이터 로그가 띄워졌다.
사망 직전까지의 세로토닌, 도파민, 코르티솔 수치가 곤두박질치는 끔찍한 그래프였다.
“김민준 박사는... 결함이 있는 부품이었습니다” 강태준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감정도 실려있지 않았다.
“시스템이 부여한 최적의 정신 상태를 그의 나약한 의지가 거부했고, 그 결과 프로토콜과 생체 시스템 간의 충돌이 발생했죠. 그의 데이터는 시스템의 오류를 수정하고, 보다 완벽한 인간 통제를 위한 초석이 되었습니다. 그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 위대한 진보를 위한 주춧돌로서 그의 소임을 다한 겁니다”
그것은 자백을 넘어선, 자신의 행위에 대한 신념의 표출이었다. 그는 다니엘을 단순한 침입자가 아닌, 자신의 철학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다니엘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속삭였다.
“보십시오, 다니엘 박사. 인류는 감정이라는 버그에 발목 잡힌 불완전한 운영체제일 뿐입니다. 슬픔, 분노, 나태함... 나는 그 모든 비효율을 제거하고, 인류를 다음 단계로 ‘업그레이드’하고 있는 겁니다. 당신 같은 천재가 낡은 윤리의 편에 설 겁니까, 아니면 새로운 시대의 설계자 편에 서겠습니까?”
강태준은 다니엘을 시험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위대함을 증명하고, 동반자를 찾기 위해 기꺼이 판을 벌인 것이었다.
다니엘은 깨달았다.
자신이 상대하는 것은 단순한 범죄자가 아니라, 스스로 신이 되려 하는 광신도라는 것을.
그의 손에 들린 증거의 무게가 순식간에 몇 배는 더 무거워졌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