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스릴러 소설 the Trap (4)
시간이 흐를수록 지안은 자신이 가진 ‘천재성’과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퀀텀 코어 내부에서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최고 경영진은 그를 영입할 때와 달리, 그의 제안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특히 현장 엔지니어들의 목소리는 철저히 무시되었다.
‘시냅스’ 프로젝트의 다음 단계는 칩 생산을 위한 파운드리 공정 최적화였다.
지안은 기존 실리콘 기반의 CMOS 공정으로는 SNN의 초저전력, 고효율 특성을 완벽하게 구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는 새로운 소재인 ‘강유전체(Ferroelectric)’를 활용한 차세대 비휘발성 메모리(FeRAM)와 이를 통합한 3D 적층 구조의 뉴로모픽 칩 생산 공정을 제안했다.
이는 기존 AI 칩의 에너지 효율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집적도를 극대화할 수 있는 혁신적인 방안이었다.
“강유전체 기반의 메모리는 기존 D램보다 100배 이상 빠른 읽기/쓰기 속도를 가지면서도, 전력 소모는 100분의 1 수준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이를 시냅스 칩의 뉴런 가중치 저장에 활용한다면, 진정한 의미의 ‘뇌 모방형’ 반도체가 가능해집니다. 현재 연구팀에서 진행한 시뮬레이션 결과, 기존 공정 대비 칩 성능 30% 향상과 전력 소모 50% 절감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얻었습니다.”
지안은 파운드리 사업부 임원들 앞에서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자세한 데이터와 함께, 이 기술이 퀀텀 코어를 AI 반도체 시장의 압도적인 선두 주자로 만들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임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이지안 박사, 말씀하신 기술의 잠재력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강유전체 기반 공정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기술입니다. 저희 파운드리 사업부는 안정적인 수율과 기존 고객사들과의 약속이 중요합니다. 새로운 공정을 도입하려면 막대한 투자와 개발 기간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위험’이 따릅니다.”
파운드리 사업부장은 ‘위험’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며 지안의 제안을 일축했다.
그는 과감한 투자나 도전보다는, 이미 검증된 기술과 안정적인 생산에만 관심이 있었다.
지안은 어이없었다.
“새로운 기술은 항상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 아닙니까? 인텔도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처음 도입할 때 막대한 위험을 감수했습니다. 저희가 이런 도전을 하지 않으면, 결국 후발 주자들에게 따라잡힐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당장의 안정성만 추구하면, 미래 경쟁력을 잃게 됩니다!”
그의 논리적인 반박에도 불구하고, 임원들은 ‘안정 지향’ 태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특히 재무 출신의 경영진들은 철저히 숫자로만 판단했다. 강유전체 공정 도입에 필요한 초기 투자 비용과 예상되는 위험만 부각시킬 뿐, 장기적인 기술 우위나 시장 선점 효과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더욱 실망스러웠던 것은, 현장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며 이 기술의 잠재력을 인지하고 있던 일부 파운드리 엔지니어들조차 회의에서 침묵했다는 사실이었다.
회의가 끝난 후, 한 선임 엔지니어가 지안에게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안 박사님, 저희도 강유전체 기술의 필요성은 잘 압니다. 하지만... 위에서는 이미 정해놓은 방향이 있습니다. 괜히 다른 의견을 냈다가 ‘밉보이면’ 프로젝트에서 배제되거나,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 겁니다.”
지안은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최고의 인재들이 모인 회사’라는 환상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 현장의 전문가들이 가진 통찰력과 경험이 최고 경영진에게 전달되지 않고, 오히려 침묵을 강요당하는 현실. 이는 퀀텀 코어가 가진 가장 심각한 문제였다.
그날 밤, 지안은 자신의 침대에 누워 천장을 응시했다.
꿈의 직장에서 펼치려 했던 그의 야심 찬 비전들이 차가운 관료주의의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 나는 것을 그는 막을 수 없었다. ‘시냅스’ 프로젝트는 점점 더 희미해져 갔고, 그와 함께 그의 꿈도 조금씩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