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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모 May 16. 2019

영화 <미성년> 리뷰

누가 그렇게 될 줄 알았겠어?

**스포일러가 되는 내용이 포함되어있습니다.

배우와 감독의 역할은 분명히 다른 영역일 테지만 오랜 배우 생활은 감독이 되어 영화를 만드는데 큰 자양분이 되는 것이 맞나 보다.

배우 김윤석의 감독 데뷔작 영화 <미성년>을 보고 나서 그의 배우 생활 속에서 촘촘히 쌓인 그만의 영화 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배우 김윤석의 필모에서 많은 역할이 경찰 아니면 조직폭력배와 같은 전형적으로 거친 남성 역할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데 그의 감독 데뷔작 <미성년>에서는 어쩐지 그를 제외한 모든 주조연 배우들이 여성이다. 게다가 이 영화의 주연이라고 할 수 있는 두 아이는 17살 고등학생이다. 염정아, 김소진 그리고 두 신인 여배우 4명의 여성 캐릭터들을 통해 그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대원(김윤석)의 딸 주리(김혜준)는 아빠의 불륜사실을 알게 된다. 게다가 그 불륜의 대상은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이의 엄마다. 심지어 임신까지 한 상태란다. 불륜의 대상인 미희(김소진)의 딸 윤아(박세진)의 머리채를 잡지만 그걸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엄마가 이 사실을 알까 주리는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김윤석의 아내이자 주리의 엄마 영주(염정아)도 사실 불륜 사실을 알고 있다. 영주는 음식점을 운영하는 미희를 찾아가 의도치 않게 그녀를 밀치다 아기에게 문제가 생기고 미희는 조산을 하게 된다. 모두가 알게 된 이 시점에서 대원은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회피하고 도망간다. 그렇지만 남겨진 네 여자는 나름의 방식으로 문제를 직면한다.

미성년이라는 뜻은 성년이 되지 않은 아직 미숙한 존재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성년, 성인의 의미는 무엇일까? 성숙한 인간, 곧 미숙한 시기를 지나 올바른 판단과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다 자란 인간이란 뜻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아이러니하게도 미성년에게서 더욱 성숙하고 성인에게서는 미숙한 모습들을 보여준다. 주리와 윤아는 “다신 보지 말자” 하고 항상 헤어지지만 어느새 동생이라는 지울 수 없는 끈끈한 결속과 새 생명에 대한 책임감으로 계속 마주하게 된다. 두 미성년은 인큐베이터에 있는 동생을 보러 가고 상처에 다친 엄마들을 걱정한다. 윤아는 심지어 영주가 대신 내 준 엄마의 병원비를 갚기 위해 오랜만에 아빠를 찾아가지만 윤아의 이름도 나이도 제대로 모르는 아빠는 미안하다며 카지노로 향하는 차에 올라탄다. 결국 아르바이트비를 몽땅 털어 갚지만 오만 원이 부족하다. 그리고 영주에게 부족한 오만 원을 꼭 갚겠다고 말한다.  

남편의 불륜을 알게 된 여자와 마지막 사랑이라고 믿었던 남자에게 버림받은 여자, 잘 살아보려고 노력한 두 사람이지만 지금 두 사람에게 닥친 상황은    성숙하게 대처하기가 어렵다. 두 사람의 나름의 방식으로 서로에게 사과를 구하고 상황을 견디고 수습하려 해 보지만 울컥 나오는 울음은 어찌할 수 없다.

두 아이는 엄마 아빠 때문에 겪게 된 일련의 일들을 생각하며 말한다. “우리 엄마가 나를 19살에 낳을 줄 알았겠냐”, “ 우리 아빠도 나이 먹어서 바람피우고 그럴 줄 알았겠냐” 미성숙한 두 존재가 성숙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성인을 향한 위로의 말 같았다.

성인이라면 모두 성숙할까?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고 연륜이 쌓이면 모든 답을 알고 더 지혜로워지는 것이 맞을까? 갑자기 서른이 되었으니 마흔이 되었으니 이제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하고 누가 성인 출발선을 그어 놓은 것도 아니고.. 어쩌면 세상을 살다가 이런저런 길에 발을 들이고, 겁이 많아지고 외로움에 더 나약한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세상에 덜 찌들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덜 자란 존재가 더 세상을 선명하고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네 명의 여자와 그 중심에 서 있는 한 중년의 남성의 소소할 수 도 있는 이야기를 아주 세심한 시선으로 그린 김윤석 감독의 첫 번째 작품을 보고 나는 벌써 그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이미지 출처: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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