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 10, 2022
평일 퇴근 후의 일상은 단조롭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운동을 가고, 격주 목요일마다 독서모임에 간다. 10시면 잠자리에 드는 습관 때문에 다른 약속을 잡는 일은 거의 없다. 일터에서는 초과근무를 하는 날을 제외하면 6시에 퇴근한다. 곧장 집으로 돌아오면 7시쯤 된다.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하고 뒷정리를 하면 어느새 8시다. 집안일을 할 때도 손이 느린 티가 난다.
그렇게 저녁 식사까지 마치고 나면 남은 시간은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데 쓴다. 외출복을 벗어 빨래통에 넣거나 옷걸이에 걸어 두고, 아침에 출근하며 미처 정리하지 못한 물건들을 정돈하고, 방을 청결한 상태로 되돌린다. 마지막으로 씻고 잘 준비까지 마치고 나면 다시 한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9시부터는 웬만하면 휴대전화를 쓰지 않으려고 하지만, 드물게 친구와 통화를 하는 날도 있다. 어제가 그런 날이었다.
"너네 집에도 있어야 할 것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잖아."
친구는 최근 이직한 새 회사와 대표이사에 대한 이야길 하다가, 대표이사가 무척 깔끔한 사람이라는 이야길 하다가, 어쩐지 그게 좀 마음에 걸린다는 이야길 하다가, 그러고 보면 너도 그와 똑같은 부류의 인간이라며 별안간 내게로 이야기의 화살을 돌렸다. 일단 변을 하자면 나는 유난스러울 정도로 깔끔을 떠는 사람은 아니다. 책장 깊숙이 쌓인 먼지와 규칙 없이 널브러져 있는 냉장고 안의 식재료들이 이를 증명한다.
다만 있어야 할 것들을 있어야 할 자리에 두는 사람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다. 책장에는 책을, 냉장고에는 식재료를 넣듯이, 무엇이든 제자리에 두는 걸 좋아한다. 친구는 평소 정돈하기 좋아하는 내 습관을 알고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저녁 일과도 그런 습관과 관계가 있다. 그런데 사실 정돈하는 대상은 외부 공간만이 아니다.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을 정리하는 데 더 많은 품을 들인다.
온종일 외부의 자극으로 어지러워진 마음을 가지런한 상태로 되돌리는 일, 오늘의 생각을 떠나보내고 내일의 생각을 위한 마음의 공간을 만들어 두는 일. 그게 내 하루 일과 중 맨 끝에 오는 일이다. 이를 위해 매일 일기를 써온지도 어느덧 5년이 됐다. 지금처럼 매일은 아니었지만 20대 때도 부정기적으로 일기를 썼다. 15년 가까이 일기를 써오며 깨달은 건 어떤 감정이든 결국 희미해지고 만다는 사실이다.
언젠가 사라질 순간의 감정에 사로잡혀 너무 들뜨거나 침체되지 않도록, 좋았던 기분도 나빴던 기분도 모두 오늘의 일기에 쓰고 털어낸다. 그렇게 마음까지 되돌리고 난 후에 비로소 잠자리에 든다. 시인과 촌장이 부른 <풍경>이란 곡에서는 이런 노랫말이 반복된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오늘 하루도 이렇게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어 다행이다.
부기.
물론 나도 사람인지라 게으름에 못 이겨 정돈을 미루는 날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