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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의 솔 Jul 30. 2021

봄의 장면

Mar 28, 2021

모든 계절에는 그에 어울리는 풍경이 있다. 봄에 어울리는 풍경이라 하면 벚꽃이 떠오르고, 벚꽃에 관한 기억이라 하면 스무   여행이 떠오른다. 스무   여행은 진해였다.  여행은 당시 새내기 대학생이었던 내가 자발적으로 들어간 여행 동아리의  여행이기도 했다. 그해  여행 동아리에 가입하겠다고 지원한 신입생은 나를 포함해 모두 여덟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근래  년간  가장 많은 인원이 지원했던 것이라고 한다.  동아리는 너희들이 살린 거나 다름없다고,  만남에서 약간은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선배들이 입을 모아 하던 말을, 영문도 모르고 경청했던  기억한다.


진해로 떠난 날은 4월의 첫 번째 토요일이었다. 하늘이 맑은 날이었다. 여행일 아침, 뉴스에서는 때마침 진해의 벚꽃이 만개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군에서 운전병을 한 이력이 있다는 선배 하나가 출발 시간에 맞춰 12인승 스타렉스를 빌려왔고, 아직은 사이가 데면데면한 동아리 사람들끼리 그 앞에서 어색하게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출발지에서 진해까지 가는 데는 네 시간쯤 걸렸지만, 여행의 설렘이 있어 멀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진해로 가는 길에, 선배 중 하나가 김동률 5집 앨범 수록곡인 <출발>을, 좋아하는 곡이라며 들려주었던 것도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 있다.


우리가 벚꽃의 고장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차창 밖으로 분홍빛이 일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뒷좌석에 앉아있던 누군가 짧게 ‘와아’하는 탄성을 내뱉었다. 그건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이기도 했다. 그 후에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벚꽃을, 봄의 풍경을, 함께 있던 사람들을 마음에 새겼다. 처음, 시작, 출발, 청춘, 설렘, 여행, 그리고 인연. 세상의 모든 낭만적인 단어들과 어울리던 시절. 내게는 그때의 풍경이 그렇게 각인되었고, 시간과 함께 풍화된 기억은 마침내 그 시절을 벚꽃이라는 하나의 대상으로 귀결시켰다.


계절은 돌고 돌아 다시 봄이 되었고, 올해도 어김없이 꽃이 피었다. 나와 나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달라졌지만, 벚꽃이 피고 지는 것은 여전히 그때와 다름이 없다. 오래전, 벚꽃에 새겨진 스무 살 그 봄의 장면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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