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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의 솔 Aug 03. 2021

요즘 재미있는 일

Jul 23, 2021

스무 살 여름, 서수원에 있는 한 모텔에서 캐셔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지역에서 스무 살이 하기에는 다소 거칠어(?) 보이기까지 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숙식이 제공됐기 때문이다. 돈은 벌어야 했고, 방을 따로 구해 도시에 나올만한 형편은 되지 못했으므로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렇게 외도하는 기혼자가 만연한 불륜의 성지에서 스무 살 첫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모텔은 늘 어두웠다. 입구부터 객실까지 어둡지 않은 곳이 없었다. 모텔이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거북함은 그 특유의 음침한 분위기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훗날 생각했다. 내가 주로 머무르던 카운터와 쪽방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 공간들은 창문 하나 없이 외부와 단절되어 있었다. 모텔 안에서 내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으면서 바깥 풍경을 볼 수 있었던 공간은 층과 층을 잇는 계단이 유일했다.


계단에는 세로로 길게 난 창이 있었다. 그 창이 좋아서 객실에 갈 일이 있으면 부러 계단을 오르내렸다. 창밖의 하늘을 보고 있으면 숨통이 좀 트이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세로로 길쭉하게, 격자무늬가 곧게 난 하늘. 그 시절 내가 바라보던 하늘의 모양은 그랬다. 언젠가 하루는 창밖으로 바라본 하늘이 너무 예뻐서 그만 참지 못하고 근무 시간에 밖으로 뛰쳐나갔다. 돌아보면 여름 하늘은 그때도 지금처럼 예뻤다.


그날, 실컷 하늘을 올려다보고 다시 어두운 실내로 돌아오는 길에 청소 일하던 여사님을 만났다. 나는 퍽 들뜬 채로 바깥 하늘이 무척 예쁘다고 말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그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하늘 올려다볼 여유도 있고. 젊다, 젊어!”


뒤이어 하늘을 올려다보고 감동할 수 있는 건 젊은이의 특권 같은 거라는 말을 했던가. 그건 부정확한 기억이다. 다만 그날 스스로 했던 다짐만은 확실히 기억한다. 나이가 들더라도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이 되겠다고, 하늘의 아름다움을 감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겠다고. 스무 살 여름의 나는 다짐했었다.


요즘 가장 재미있는 일은 하늘을 감상하는 일이다. 짧은 장마를  , 미세먼지가 사라진 여름 하늘은 여전히 깊고 푸르고 아름답다. 그리고  역시 아직은 그런 하늘을 바라보며 살고 있다. 스무  그때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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