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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의 솔 Aug 19. 2021

꾸준함에 대하여

Aug 19, 2021

수목원에 다녀왔다. 연휴의 마지막 날이었다. 이번 연휴는 대부분 혼자서 시간을 보냈다. 두 달 전에 잡았던 약속이 거리두기 단계 상향으로 어그러졌기 때문이다. 다른 약속을 만들어 누군가를 만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지난봄부터 자의 반 타의 반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지 않았고, 그러니 이번은 혼자 있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런 외부의 자극 없이 흘러가는 순간을 그저 바라보는 시간이 내겐 가끔 필요하다. 오롯이 홀로 보내는 시간이란 대체로 다정하지 않게 마련이지만, 그 다정하지 않은 시간들이 무른 나를 조금 더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고 믿으니까.


수목원에 가기로 마음을 먹은 것은 느지막이 일어난 휴일 아침의 날씨가 좋았기 때문이다. 나라는 사람은 그런 자잘한 이유로 예정에 없던 일을 자주 저지른다. 혼자 외출할 때면 늘 지니는 카메라와 읽을 책 한 권, 그리고 어쩌면 필요할지 모르는 돗자리를 캔버스백에 챙겨 정오가 되기 전에 집을 나섰다. 입추가 지나면서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지만 8월 중순의 한낮은 아직 무더워서, 버스 정류장까지 잠깐 걸었을 뿐인데도 금세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끈적해진 이마를 손등으로 훔쳐내면서 생각했다. 여름도 이렇게 지나가겠지.


얼마 전 수원에서 벌써 세 번째 여름을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깜짝 놀랐다. 유년을 보낸 고향과 학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지낸 소도시에서의 생활을 제외하면 국내에서 한 곳에 이렇게 오래 머무르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돌아보면 나는 꾸준함과는 늘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엔 연습장 한 권을 끝까지 채워 써본 적이 없고, 대학 때는 한 학기 다니고 한 학기 휴학하는 꼴로 학교에 다녀 군대 다녀온 동기 남자애들보다 더 늦게 졸업했다. 사회생활은 더 엉망진창이어서, 첫 직장도 두 번째 직장도 모두 1년을 넘기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그랬던 내가 뭔가를 꾸준히 하기 시작한 건, 두 번째 직장 퇴사 후 도피하듯 떠난 이국의 소도시에서 지내면서부터였다.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혀오는 높은 빌딩이 없고, 무표정한 얼굴로 모르는 사람과 살을 맞대고 타는 만원 전철도 없는, 무언가를 더 많이 가졌거나 덜 가진 누군가와 끊임없이 비교하고 경쟁할 필요가 없는 그 작은 도시에서 나는 나도 무언가를 꾸준히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매일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다. 내게 주어진 3년이라는 기한을 모자람 없이 채우고 한국으로 귀국하면서, 나는 앞으로의 내 인생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아무것도 가늠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분명 떠나오기 이전의 삶과는 다를 것이라는 걸 알았다.


무언가를 꾸준히 하기 위해 필요한 건 편안한 마음이다. 사람의 마음은 단순해서 자신이 서 있는 곳의 풍경을 닮아가게 마련이다. 복잡한 풍경 속에서 마음이 뾰족해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 단순한 사실을 몰라서 참 오래도 헤맸다. 나는 이제 내가 자연 속에서 마음의 안식을 얻는 사람이라는 걸 안다. 한국에 돌아온 뒤 틈이 날 때마다 자연을 찾는 이유다. 날씨가 맑았던 휴일 오후, 오랜만에 찾은 수목원에서 여름 동안 자주 말썽을 부렸던 마음을 다독이고 돌아왔다. 그러니 당분간은 괜찮을 것이다. 다시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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