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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의 솔 Aug 26. 2021

첫눈의 추억

Nov 27, 2015

고교 시절 나는 놀랍게도 천체부의 일원이었다. 과학과는 거리가 멀던 내가 어째서 그 많은 활동 중에 천체부를 택한 걸까. 지금은 그 계기를 까맣게 잊은 걸 보면, 그리 대단한 이유는 아니었겠지 싶다. 매주 한 번 있는 클럽활동은 말이 수업의 일환이지, 실상 자유시간에 가까웠다. 학교 활동이란 모름지기 한낮에 이루어지기 마련이므로, 밤에 별을 관측해야 하는 천체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었다. 열에 아홉 번은 개그 프로그램 <웃찾사>를 봤고, 남은 한 번쯤은 그래도 천체부라는 명분을 살리기 위해 <스타워즈> 같은 우주 소재 영화를 보곤 했다.


천체부 담당 선생님은 학생들 사이에서 일명 '블랙봉'―까만 몽둥이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이라 불리던 지구과학 선생님이었다. 그는 커다란 망원경 한 대를 가지고 있었다. 크고 굵직한 외형 때문에 '대포'라는 별칭이 붙은 망원경이었다. 선생님은 언젠가 대포와 함께 별을 보러 가자고 종종 말씀하셨지만, 클럽활동 시간에는 거의 얼굴을 비치지 않으셨다. 매일 아침 0교시부터 시작되는 정규 수업과 보충 학습, 야간 자습으로 지친 우리들이 클럽활동 시간을 간절히 기다렸던 이유이기도 하다. 선생님이 클럽활동 시간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건, 두 번째 학기가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겨울은 밤하늘을 관측하기 좋은 계절이다, 주말 동안 1박 2일로 별을 보러 갈까 한다, 함께할 사람들은 참가해라, 졸업한 네 선배들도 몇 올 것이다. 어렴풋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을 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주말에도 학교 기숙사에 남아 강제 자습을 해야 하는 처지였던 나와 내 친구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참가하겠다는 의사 표시로 손을 번쩍 들었다. 클럽활동이라는 정당한 이유를 들어 따분한 자습을 제치기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별을 보러 떠난 날은 12월 3일 토요일이었다. 선생님과 졸업한 선배들, 재학생을 합해 모두 십수 명쯤 되었을까. 느지막한 오후에 학교 운동장에서 만난 우리들은 계룡산 모처에 선생님이 미리 잡아두었다는 민박집으로 이동했다. 민박집은 큰 방과 작은 방이 옆으로 나란히 붙은 전형적인 시골 농가였다. 두 방 사이를 폭이 좁은 마루가 이어주고 있었고, 마루 위로는 함석 기와지붕의 처마가 손에 닿을 듯 야트막이 내려와 있었다. 그런 집에서 나고 자란 내게는 제법 친숙한 풍경이었다. 그렇게 짧은 민박집 구경을 마치고 막 짐을 내려놓으려던 참이었다.


"눈이다!"


무리 중 누군가 먼저 외쳤고, 머지않아 여러 사람의 웅성거림이 그 위로 겹쳐졌다. 첫눈이었다. 올려다본 하늘에는 어느샌가 묵직한 눈구름이 몰려와 있었다. 선생님은 오늘 밤에 별 보기는 글러 먹었다며 체념한 듯 말씀하셨다. 설령 정말 별을 보지 못한다고 해도 나는 좋았다. 열일곱 겨울의 나는 아마 별보다는 눈을 더 좋아했던가 보다. 포슬포슬 내리기 시작한 눈발은 점차 굵어지더니 이윽고 펄펄 내리는 함박눈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별 보기를 재빠르게 포기하고 구들방에 둘러앉아 노닥일 준비를 했다. 두서없는 이야기들은 새벽녘까지 이어졌고 선생님과 대학생이 된 선배들은 취했으며 나와 친구는 들뜬 채로 수다를 떨었다. 잠이 드는지 마는지도 모르는 채 마침내 잠들었을 때까지도 함박눈은 민박집의 지붕을 쉴 새 없이 두드리고 있었다.


그해 우리 지역의 첫눈은 폭설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밖으로 나갔을 때 눈앞에 기막힌 설경이 펼쳐졌음이야 두말할 것도 없다. 폭설로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긴 산중은 고요하면서도 차분했다. 민박집 처마 위로는 살짝만 건드려도 앞으로 쏟아져 내릴 듯한 많은 양의 눈이 아슬아슬하게 쌓여 있었다. 마구잡이로 벗어놓은 나와 친구의 신발을 밤사이 누군가 눈에 젖지 않게 마루 밑으로 가지런히 넣어주었던 것도 기억한다. 내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첫눈의 추억이다.


어제 고향에 큰 눈이 내렸다고 한다. 그 눈은 올해 고향에 내린 첫눈이기도 했다. 10년 전 그때와 같다. 저녁 무렵 SNS의 타임라인은 고향에 남아 있는 친구와 지인들의 눈 사진으로 도배되었다. 그 넋을 잃게 하는 새하얀 풍경에 문득 코끝이 시큰해져 온 것은 고향에 대한 향수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해마다 조금씩 멀어지는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감질나게 흩날리다 만 서울의 첫눈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눈이 내리면 교통이 불편해 싫다고 하고 또 다른 어떤 이는 거리가 지저분해져 싫다고 하지만, 나는 여전히 눈 내리는 풍경이 좋다. 눈의 본성이란 본디 하얗고 또 하얀 것이 아니던가. 시비를 가리자면 세상을 하얗게 안은 눈을 어지럽히는 건 오히려 사람 쪽이다. 많은 시간이 흘러서 지금보다 더 많은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나이가 된다고 해도, 그래서 많은 일들에 무뎌진다고 해도,  오래도록 첫눈에 설레고 행복해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다.



부기.

1. 이 글을 쓰고 난 이듬해 눈의 고장 아키타로 넘어가 눈 구경을 원 없이 하게 되었으니, 인생이란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

2. 2022년 12월 3일 토요일에도 첫눈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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