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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의 솔 Sep 22. 2021

달밤에 든 생각

Sep 20, 2021

고향 집 근처에 작은 하천이 흐른다. 내가 어렸을 때는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구정물이 흘렀다. 그런 물에서도 한여름이면 시골 아이들은 천진하게 물놀이를 즐겼다. 나는 종종 하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서 그 모습을 내려다보곤 했다. 요란한 물놀이보다는 혼자 다리 난간을 손으로 쓸면서 가는 일이 몇 배는 더 재미있다고 생각하면서. 그 무렵 담임 선생님은 통지표의 연락사항 란에 나에 대해 '매사에 조용한 아이'라고 썼다. 그만큼 내향적이었던 성격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바뀌어 갔다.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약간의 외향성이 필요했고, 다행히 내게는 필요한 때 적절하게 외향인 가면을 꺼내 쓸 수 있는 재주가 있었다.


내가 변해가는 동안 하천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지자체와 기업의 꾸준한 정화활동으로 3급수였던 물이 1급수로 돌아왔고, 천변을 따라 걷기 좋은 산책로도 조성됐다. 몇 해 전부터는 계절마다 피는 꽃을 심어, 꽃이 만개할 때가 되면 관광객들도 조금씩 찾아오고 있다. 사는 사람이 많지 않은 시골이라 거리의 풍경은 거의 변하지 않았지만, 하천 주위의 풍경만은 많이 변했다. 그 변화가 싫지 않아서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시간을 내 천변을 걷는다. 나와 달리 걷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엄마가 먼저 밤 산책을 하자는 말을 꺼내온 건 작년 이맘때쯤 일이었다. 지금처럼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고, 하천 주위에는 핑크뮬리가 보기 좋은 때를 맞이하고 있었다.


가을밤은 풀벌레 우는 소리가 들려 좋다. 풀벌레가 우는 동안에는 곁에 있는 사람의 말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게 된다. 동시에 말을 잠시 쉬어가더라도 적막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너무 시끄럽지도 고요하지도 않은 그 균형감이 좋아 가을밤이면 자꾸 누군가와 함께 걷고 싶어 진다. 엄마와 함께 걷던 그 밤에도 사방에서 풀벌레가 울고 있었다. 비슷한 연배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엄마도 나이가 들면서 부쩍 자신이 지나온 삶에 대한 얘기를 자주 한다. 나는 엄마의 이야기를 빠짐없이 듣고 있었지만 극적인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말과 말 사이의 공백은 풀벌레가 성실하게 메워주었다.


엄마가 돌연 발걸음을 멈춰 선 건, 학창 시절 내가 자주 건너던 그 다리 근처에 이르렀을 때였다. 엄마는 다리 위에 설치된 가로등의 전구색 불빛을 바라보며 "꼭 달빛 같네." 하는 혼잣말을 했다. 그러면서 내 존재를 의식했는지 겨울철에는 주광색 불빛보다 전구색 불빛이 훨씬 따뜻해 보인다는 말을 덧붙였다. 하천의 물결을 따라 넘실거리는 가로등 불빛을 사진으로 남기는 엄마의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조금 서글퍼졌다. 오래전, 밥벌이를 위해 눈 쌓인 산길을 한 시간이 넘도록 걸어 다녔던 그가 지칠 때마다 올려다보았을 달빛과 불빛을 상상했다. 어쩌면 그 시절 엄마의 유일한 기댈 곳이었을지 모를 빛들을.


오늘 인왕산으로 달맞이를 다녀왔다. 운이 좋아서 예쁜 달을 만날 수 있었다.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펼쳐진 거대한 도시에는 셀 수도 없이 많은 불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 반짝이는 풍경을 눈에 담고 있을 때, 느닷없이 지난해 엄마와 보낸 가을밤이 떠올랐다. 지금도 어둡고 낮은 곳에서 희미한 불빛을 위안 삼아 살아가고 있을 무수한 삶들을 위해 소원을 빌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그 때문이다. 크고 무거운 삶들에 비해 한없이 작고 가벼운 소원을 빌면서, 달빛만은 앞으로도 공평하지 않은 세상을 공평하게 비추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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