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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의 솔 Aug 21. 2021

꿈같은 장면들

Aug 1, 2016

“그럼 가자! 오늘.”


여행은 느닷없이 시작됐다. 아키타에 온 지 넉 달이 되도록 한 번도 바다를 보지 못했다는 내 말이 발단이었다. 처음에는 다들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I는 처음부터 진심이었다고 했다. 퇴근 후 예정에 없던 바다 여행에 동행하게 된 팀원들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바다 얘기를 꺼낸 나는 졸지에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미안한 마음과는 별개로 기분이 조금 들뜬 것도 사실이었다. 오늘 가고 싶은 곳으로 오늘 떠나는 여행은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한다.


퇴근을 알리는 차임벨이 울리자마자, I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미적거리는 팀원들을 채근했다. 일몰 시간에 맞춰 도착하려면 서둘러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람들도 이젠 별 수 없겠다는 듯이 하나둘 자신의 짐을 꾸려 일어났다. 바다까지는 I의 차를 타고 다 함께 이동하기로 했다. I의 차량은 빨간색 SUV였는데, 평소 그의 이미지와 무척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차량의 뒷문이 제대로 닫혔는 지를 재차 확인한 뒤, 목적지인 유리혼조시의 바다를 향해 무섭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자동차 속도계의 숫자가 140을 표시하는 것을 본 후로, 나는 계기판에서 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바다로 가는 길에 너른 평야의 끝에서 스콜처럼 쏟아지는 소낙비를 보았다. 얼마쯤 지나고 비가 그치자, 거짓말처럼 무지개가 떠올랐다. 이와키후타고(岩城二古) 인근의 이름 모를 해안에 도착했을 땐, 해는 이미 수평선 너머로 모습을 감추고 없었다. I는 일몰을 볼 수 없어 무척 아쉽게 됐다고 하였으나, 마지막 잔양의 빛 또한 나름의 운치가 있었다. 해안선은 정직하게 뻗어 있었고, 바다는 심오하여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하늘의 한편은 아주 맑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천둥이 울리고 있었다. 돌아보면 꿈같은 장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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