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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의 솔 Aug 23. 2021

가쿠노다테 벚꽃 기행

Apr 24, 2016

아키타현청의 국제교류원들과 함께 가쿠노다테(角館)에 다녀왔다. 가쿠노다테는 에도 시대의 무사 저택이 남아 있는 곳으로, 아키타를 대표하는 관광 명소다. 옛 정취 가득한 거리 풍경이 교토를 떠올리게 한다고 해서, 이 지역의 ‘작은 교토(小京都)’라 불리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이 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건, 교토를 연상케 하는 고풍스러운 거리가 아니다. 마을의 명물은 따로 있다. 김승옥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가상의 도시 무진의 명물이 ‘안개’라면, 가쿠노다테의 명물은 ‘벚꽃’이다. 물론 누가 그렇다고 일러준 것은 아니고, 내 마음대로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오늘 가쿠노다테를 찾은 목적도 꽃 구경이었다. 봄이 늦은 동북 지방에 오게 된 덕으로, 올해는 좋아하는 벚꽃을 원 없이 보고 있다.


해마다 봄이면 가쿠노다테의 무사 저택 거리는 연분홍빛으로 넘실댄다. 마을에는 모두 450여 그루의 수양 벚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중 무려 162그루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고 한다. 오래된 것은 수령이 300년을 훌쩍 넘는다. 300여 년 전, 이곳에 처음 벚나무가 심기게 된 사연이 애틋하다. 당시 구보타 번(久保田藩)*의 번주(藩主)*였던 사타케 가문으로, 교토 출신의 어린 여인이 시집을 오게 되었다. 고향이 그리워질 것을 예감한 여인은 혼수품으로 고향의 벚꽃 묘목 세 그루를 가져와 심었다. 여인의 향수가 담긴 세 그루의 수양 벚나무는 오랜 세월을 거쳐 조금씩 번식해 갔고, 어느 순간 지금처럼 온 마을을 뒤덮게 되었다. 


벚나무가 늘어갈 때마다 고향을 향한 여인의 그리움도 커졌던 건 아닐까. 봄철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고향의 벚꽃을 보면서 여인은 행복했을까, 아니면 쓸쓸했을까. 행복한 표정으로 봄빛을 만끽하는 상춘객들 틈에서, 가쿠노다테에 ‘작은 교토’라는 별칭이 붙은 건 어쩌면 무사 저택 때문이 아니라 교토에서 온 벚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멋대로 생각했다.



*구보타 번(久保田藩):현재의 아키타

*번주(藩主):번의 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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