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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의 솔 Sep 09. 2021

살기 좋은 동네에 있는 반짝반짝 빛나는 집

Oct 2, 2016

누군가  주소를 물으면 이렇게 말하고 싶어 진다. ‘살기 좋은 동네에 있는 반짝반짝 빛나는  22-2호입니다.’ 물론 실제로 그렇게 답해본 적은 없다. 듣는 사람은 이게 대체 무슨 황당무계한 소리인가  테니까. 하지만 언뜻 터무니없어 보이는  주소는 분명  집의 주소이기도 하다. 스미요시초(住吉町) 있는 샤인하임(Shine Heim)이란 이름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스미요시(住吉) 일본어로 ‘살기 좋은이란 뜻을 가진다. 그러므로 아주 근거가 없는 해석은 아니다.


다이센시에 오는 게 결정됐을 때, 시청 측에서는 미리 내가 지낼만한 집 몇 군데를 알아봐 주었다. 후보에는 목조 아파트 두 곳과 레오팔레스 두 곳이 있었다. 눈이 많은 고장이므로 쓸데없이 넓기 만한 목조 아파트에서 겨울을 나기는 힘들 거라는 주변의 의견을 참고로 해, 처음에는 편리한 레오팔레스에서 지내려고 했다. 그러다 막판에 마음을 바꾸었다. 빛이 잘 드는 아파트의 사진이, 어딘지 모르게 낭만적인 집 주소와 이름이 아무래도 자꾸 머리에서 맴돌았기 때문이다.


샤인하임은 2층짜리 아파트로, 총 세 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2층짜리 아파트라고 하면 좀 의아할 수도 있겠다. 일본에서는 대개 목조로 지은 연립주택을 아파트라 부른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파트’하면 떠올리는 철근콘크리트와 철골조의 건물은 맨션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우리 집은 샤인하임의 가운뎃동 2층이다. 동마다 4세대가 함께 살 수 있도록 되어있지만, 옆집과 바로 아랫집은 비어있어 실제로 사람이 사는 건 두 집뿐이다. 덕분에 벽간 소음이나 층간 소음에 시달릴 일 없이 매일 평화롭게 지내고 있다.


집안에는 다다미가 깔린 일본식 방 하나와 마룻바닥으로 되어 있는 서양식 방 하나, 그리고 방보다 널찍한 부엌 겸 거실이 있다. 아파트 자체는 북향이지만 남쪽으로 크게 난 창이 있어 사진에서 보던 대로 빛이 무척 잘 든다. 날씨가 좋을 때 집안에 사방으로 난 창문을 모두 열어놓으면 바람도 시원하게 통한다. 서양식 방과 거실은 미닫이 문으로 되어 있어, 문을 완전히 밀면 하나의 공간처럼 보인다. 공간이 단절되어 있지 않고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어 마음에 든다.


아파트의 바로 옆에는 작은 공원이 하나 있다. 나는 이 공원을 우리 집에 딸린 앞마당이라고 생각한다. 공원의 둘레에는 내가 좋아하는 벚나무가 심겨 있다. 봄부터 초여름까지는 자주 이 공원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책을 읽거나, 텀블러에 담아 간 커피를 마시거나, 바람에 다붓하게 서걱대는 나뭇잎 소리를 듣거나, 자전거 타는 연습을 하는 아랫집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한동안 무더운 날씨에 나가 있지 못하다가, 오늘 오랜만에 다시 공원에 나갔다. 늘 앉던 벤치에 앉아 있는데, 아직은 무성한 벚나무의 이파리 사이로 가을볕이 반짝 스며들어왔다.


그 익숙하고 편안한 반짝임에 가만 기대어 생각했다. 봄과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 하는 동안, 나는 이미 이 풍경의 일부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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