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2016
매일 밤 꿈을 꾼다. 좋은 꿈을 꿀 때도 있고 나쁜 꿈을 꿀 때도 있다. 꿈을 많이 꾸는 사람은 꿈을 꾸는 동안 그게 꿈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나쁜 꿈을 꿀 때보다 좋은 꿈을 꿀 때 더 서글프다. 불꽃놀이를 보고 있는 동안 줄곧 좋은 꿈을 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좋아서 깨고 싶지 않은 꿈, 언젠가 깨어날 꿈이라는 걸 알기에 더욱 서글프기도 한 그런 꿈.
제1부 낮 불꽃놀이로 시작된 불꽃축제는 제2부 밤 불꽃놀이까지 장장 4시간이 넘도록 이어졌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불꽃은 더욱 밝게 빛났고, 지표면의 공기가 차가워질수록 불꽃이 피어오르는 소리는 더욱 선명하게 들렸다. 빛과 소리의 농도가 시시각각 달라지는 동안에도 사람들의 시선은 변함없이 하늘을 향해 있었다. 하늘로 쏘아 올려진 불꽃이 포물선을 그리며 수면 위로 미끄러질 때마다 관람석은 일순 한낮처럼 밝아지곤 했는데, 그때마다 보이는 사람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행복해 보였다. 나는 그렇게 많은 사람이 동시에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광경을,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본 적이 없다. 분명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 모든 풍경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온 건 바로 그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군가의 행복한 순간보다 불행한 순간을 접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으니까.
스물여덟 개사의 불꽃장인들이 야심 차게 준비한 불꽃 경연이 끝나고 이어진 건 오마가리 불꽃축제의 하이라이트라 불리는 ‘대회제공불꽃(大会提供花火)’이었다. 대회제공불꽃은 문자 그대로 주최 측에서 쏘아 올리는 불꽃으로, 최대폭 900m에 이르는 ‘와이드 스타 마인(Wide Star Mine)’―스타마인은 수많은 별들이 흩어지는 듯이 연속적으로 폭죽이 터지는 현상을 뜻하는 용어다―이 6분여간 이어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축제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이 불꽃은 뜻밖에도 연륜 있는 불꽃장인들이 아닌 ‘오마가리불꽃협동조합 청년부’에 소속된 젊은 불꽃장인들이 1년간 준비해 제작한다. 장차 불꽃축제를 이어나갈 젊은 세대들에게 가장 막중한 역할을 맡기는 것이다. 대회제공불꽃에는 매년 테마가 있는데, 올해의 테마는 ‘환희(歓喜)’였다.
관람객들이 하나둘 펜라이트를 꺼내 들기 시작한 건, 대회제공불꽃이 끝나고 사회자가 ‘피날레 불꽃’의 순서가 왔음을 알렸을 때였다. 시장님의 수행비서로 VIP석에 동행한 비서과의 Y가 D시 방문단에게도 지금 미리 펜라이트를 전해주는 편이 좋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 역시 부연 설명을 하진 않았다. 오마가리 불꽃축제의 공식 엔딩송인 아키타 현민가(県民歌)에 맞춰 피날레 불꽃이 피어오르고, 모든 축제가 끝났음을 알리는 ‘우치도메(打ち止め)’가 외쳐진 바로 그 순간, 관람석에서 거짓말처럼 일제히 펜라이트의 불빛이 켜졌다. 나도 방문단도 어리바리 다른 사람들을 따라 펜라이트를 꺾어 불빛을 냈다. “강 건너편을 봐.” Y가 말했다. 나는 Y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멀리 강 건너에서 밝고 환한 붉은빛이 타오르고 있었다.
관람객과 불꽃장인이 서로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이 ‘응원 교환(エール交換)’ 문화는 다른 비슷한 축제에서는 볼 수 없는 오마가리 불꽃축제만의 오랜 전통으로 알려져 있다. 관람객은 아름다운 불꽃과 감동을 선사해준 불꽃장인들에게 펜라이트를 흔들어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불꽃장인은 이에 대한 답례로 불꽃을 쏘아 올린 강 건너편에서 횃불을 흔든다. 80만 관람객이 일제히 펜라이트를 흔드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끝없는 빛의 물결은 마치 지상을 가로지르는 은하수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때 배경음악으로 흐르던 곡의 제목이 ‘온하늘의 별(満天の星)’이었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다. 막이 내리고, 기대하지 않았던 빛이 다시 반짝이기 시작하던 바로 그 순간이, 오마가리 불꽃축제의 모든 장면을 통틀어 가장 인상 깊고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축제가 끝난 후, 흔들리는 제등의 불빛을 따라 군중 사이를 한참 걸었다. 축제장을 완전히 빠져나오는 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축제의 여운에서 빠져나오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는 걸.
“오마가리에서는 불꽃축제가 끝나면 ‘여름이 끝났다’고들 해. 이제 정말 여름도 끝이네.”
이튿날 아침, 아직도 지난밤의 감상에 젖어 있는 내게 S가 말했다. 이어서 누군가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짧았던 여름은 끝이 났다고. 이제 곧 길고 긴 아키타의 겨울이 다가올 것이라고. 그러니 어서 한여름밤의 꿈에서 벗어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