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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의 솔 Sep 05. 2021

오마가리 불꽃축제 (3) : 축제의 서막

August, 2016

2016년 8월 27일 오전 6시. ‘제90회 전국불꽃경기대회 오마가리 불꽃축제’의 개최일임을 알리는 불꽃 한 발이 아직 물안개가 남아 있는 오모노가와 강변에서 피어올랐다. 태풍 9호로 인해 전날까지 많은 비가 내렸고, 임시 주차장 몇 곳이 침수 피해를 입었지만―이 때문에 시청 직원들은 주차장을 예약한 사람들에게 전화를 돌리느라 애를 먹었다―, 다행히 강변에 위치한 축제장에는 큰 피해가 없는 듯했다. 축제에 맞춰 전날 입국한 한국 우호교류도시 방문단의 수행 통역을 맡은 나는 아침부터 정신이 없었다. 긴 하루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전에는 방문단을 인솔해 다이센시의 대표 관광지인 ‘구 이케다씨 정원(旧池田氏庭園)’을 찾았다. 평소 같으면 사람 구경하기 어려운 한적한 관광지인데, 날이 날이어서 그런지 원내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미리 안내를 요청해놓은 문화관광해설사 I씨가 방문단을 반갑게 맞이했다. I씨는 이케다 가문을 과거 이 지역에 살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던 명망 있는 대지주 가문이라 소개한 후, 정원과 주변 건축물들에 대해 차례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순로(順路)를 따라 분주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설명을 이어나가던 I씨가 돌연 멈춰 선 것은, 역대 이케다 가계도가 전시돼 있는 옛 쌀창고(米蔵) 관람을 마치고 막 회유식(回遊式) 정원에 들어섰을 때였다.


“오늘은 바람이 좋네요. 보세요. 남동풍이 불죠. 불꽃을 쏘아 올렸을 때 연기가 바람을 타고 빨리 흘러가야 불꽃의 모양이 제대로 보이거든요. 어느 때는 연기가 관람객 쪽으로 불어오기도 하는데, 오늘은 바람의 방향을 보니 강을 따라 흐르겠어요. 불꽃축제를 하기에 최적의 조건입니다. 운이 좋으시네요.”


I씨는 멀리 오모노가와 강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뒤이어 “아무래도 한국에서 온 여러분 덕분인가 봅니다.”라는 노련한 멘트를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바람의 방향만 보고도 불꽃을 쏘아 올리기에 좋은 날이라는 걸 알다니, 과연 불꽃의 고장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가 불꽃 전문가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나도 I씨를 따라 오모노가와 강 쪽을 바라보았다. 아직은 비어있는 하늘에 머지않아 새겨질 불꽃을 두 눈으로 어렴풋이 그려보면서.




정원 관람 후 오전 일정을 마친 방문단은 불꽃축제 시작 전까지 숙소로 돌아가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나는 교류반 직원들과 함께 다시 시청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축제장에 갈 준비를 시작했다. 팀에서 가장 손재주가 좋은 A가 제등(提灯) 두 개를 연결한 짧은 막대에 다시 긴 막대를 이어 붙이고, 이어서 ‘D시 방문단’이라는 글귀가 인쇄된 종이를 고리로 연결했다. 동작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는 것으로 보아, 이미 한두 번 만들어본 솜씨가 아닌 듯했다. 왜 편한 깃발 같은 걸 쓰지 않고 번거롭게 제등을 다느냐는 내 물음에, A는 축제가 끝나면 사방이 어둡기 때문에 빛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는 웬만한 크기로 만들어서는 인파에 가려져 보이지 않기 때문에 긴 막대를 이어 붙이는 것이라는 설명도 친절히 더했다.


“여기 펜라이트. D시 방문단 것과 E것도 챙겨 넣었어.”


A의 작업이 끝난 후, 이번에는 S가 내게 펜라이트가 든 봉투를 내밀며 말했다. 펜라이트를 받아 들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내게, S는 ‘불꽃놀이를 보고 나면 알게 될 것’이라 하며 후후 웃었다. D시 방문단은 이번 축제 때 VIP석에서 불꽃을 관람하기로 되어있었고, 나는 우리 과 직원 중 유일하게 VIP석에 동행할 수 있는 허가를 받은 상태였다. 축제의 주무부서인 우리 과 직원들도 쉽게 출입할 수 없는 곳에 내가 들어갈 수 있게 된 건, 순전히 방문단의 말을 통역해 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인데, ‘좋겠다. 부러워.’하고 말하던 직원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불꽃을 보는 동안 도대체 무슨 말이 필요할까, 속으로는 생각했다.


쉬고 있던 방문단의 일정이 재개된 건 오후 3시쯤이었다. 방문단은 축제장에 바로 가지 않고 시청에 들러 다이센시장과 짧은 인사를 나누기로 되어 있었다. 숙소부터 시청까지는 관용차를 타고 이동했다. 축제 당일 다이센시의 중심부인 오마가리 시내는 교통이 엄격하게 통제된다. 미리 허가받은 차량이 아니면 차를 타고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일반 관광객들은 짧게는 3~40분, 길게는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길을 걸어서 축제장으로 이동해야 한다. 방문단을 태운 관용차가 지나는 길 양 옆으로 축제장을 향해 걷는 인파가 눈에 띄었다. 아침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었다. 축제의 시작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인파를 뚫고 가까스로 도착한 시청도 인산인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식음시설이나 편의시설이 부족한 다이센시에서는 매년 불꽃축제 때마다 관람객들을 위해 시청을 전면 개방한다. 관람객들은 민원 업무를 보는 1층뿐만 아니라, 일반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가 모여있는 2층의 복도까지 빈틈없이 자리를 펴고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 모든 광경을 방문단은 시종일관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시청을 이렇게까지 개방하다니 놀랍군요.”하고 방문단 중 누군가 먼저 말했고, “시청은 원래 시민의 것이니까요.”하고 우리 쪽 직원이 이어서 말했다. 그가 대답 아닌 대답을 하기까진 어떠한 공백도 없었고, 그건 의식적으로 나온 말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나온 말이라는 걸 뜻했다.


방문단은 예정대로 시장과의 짧은 접견을 가졌다. 불꽃축제를 전후로 다이센시장은 분 단위로 나누어진 빽빽한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그의 일정을 매번 자비 없이 채우는 비서과 직원들은 당초 계획했던 것보다 접견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고 전전긍긍했다. 조금 더 지체했다가는 개막에 늦을 수 있으니 이제는 정말로 서둘러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시청에서부터 축제장까지는 모든 차량의 통행이 예외 없이 금지되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손님이든 손님을 맞이하는 쪽이든 모두가 자신의 두 발로 걸어야 했다. 다이센시장도 방문단도 시민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같은 길을 걸었다. 그건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풍경이라고 생각했다.




축제장은 매년 오모노가와 강변, 오마가리하나비 대교(大曲花火大橋)부터 히메가미교(姫神橋)에 이르는 약 1.5km 구간에 특설된다. 올해도 다음 해에도 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아마 장소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교류반 직원들의 능숙한 안내에 따라 도착한 VIP석은 드넓은 축제장의 정중앙에 우뚝 솟아 있었다. 그 좌우로는 좌식 관람석과 의자석, 자유 관람석이 가없이 펼쳐져 있었다. 좌로 봐도 우로 봐도 사람뿐인 풍경에 놀란 것은 아무래도 축제가 처음인 방문단과 나뿐인 듯했다. 이곳 사람들은 익숙한 풍경이라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내게 익숙했던 풍경들도 누군가에겐 이처럼 낯설고 신기한 것이었을까. 잠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8월의 마지막 토요일 오후 5시 30분. 태양은 어느덧 서쪽 하늘 쪽으로 조금  기울어 있었고, 여름의 잔열인지 몰려든 인파의 열기인지 모를 뜨거운 열기가 오모노가와 강변을 가득 메운 가운데, 90 오마가리 불꽃축제의 개최를 알리는 사회자의 안내 멘트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그토록 기다리던 축제의 시작이었다.


(다음에 계속)



제90회 전국불꽃경기대회 오마가리 불꽃축제(2016) 오프닝 불꽃 "꿈의 하늘(夢の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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