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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의 솔 Sep 03. 2021

오마가리 불꽃축제 (2) : 불꽃장인에 대하여

August, 2016

불꽃놀이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은 백제문화제의 전야제다. 내가 자란 공주에서는 인접한 부여와 함께 지금도 매년 백제문화제를 개최한다. 내가 아직 어렸을 때는 양 지역이 격년으로 번갈아 개최했다. 두 발이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이었으므로 부여에서 개최할 때는 가보지 못했지만, 공주에서 개최하는 해에는 친구들과 늘 전야제를 찾았다.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전야제에서는 매번 불꽃을 쏘아 올렸다. 지금처럼 지역 축제나 불꽃놀이가 흔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에 적어도 2년에 한 번씩은 불꽃놀이를 볼 수 있었던 셈이니, 그러고 보면 나도 불꽃과 조금은 인연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백제문화제의 불꽃놀이는 오마가리 불꽃축제에 비하면 시시한 규모지만, 강변에서 진행된다는 점에서는 비슷했다. 불꽃은 그때도 지금처럼 깜깜한 밤하늘과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 위를 공평하게 반짝였다. 그 찰나의 반짝거림에 감동해 매번 울 것 같은 기분이 되면서도, 그런 귀중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불꽃을 누가 만드는 가에 대해서는 한 번도 궁금해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일본에 불꽃을 만들고 쏘아 올리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단어, 즉 ‘하나비시(花火師)’라는 말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불꽃에 관한 용어를 공부해둬야겠다고 생각한 건, 한국의 우호교류도시에서 불꽃축제 기간에 맞춰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난 이후였다. 통역을 담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늘에 펼쳐지는 모양에 따라 부르는 불꽃의 이름이 모두 다르다는 것도, 불꽃의 모양과 색상을 결정하는 화약을 ‘별(星)’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연화―불꽃놀이에 사용하는 둥근 공 모양의 폭죽으로, 일본에서는 ‘불꽃구슬(花火玉)’이라는 표현을 쓴다―의 크기와 무게에 따라 발사거리가 달라진다는 것도 이때 모두 처음 알았다. 하지만 불꽃에 관한 많은 정보 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건 다름 아닌 ‘하나비시(花火師)’라는 단어였다.


불꽃을 만들고 쏘아 올리는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하는데, 왜 우리나라에는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 없을까. 그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정보의 바다를 열심히 찾아봤지만 이렇다 할 해답을 얻진 못했다. 다이센시에서 불꽃 제조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하나비시’ K씨를 만나게 된 건 그즈음이었다. K씨는 한국에서 왔다는 내게 친근감을 표시하기 위해 한국과의 인연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93년에 열린 대전 엑스포에서 불꽃을 쏘아 올린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에 불꽃을 가져가려면 꼭 H사를 통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한국에서는 H사가 불꽃 산업을 독점하고 있으니까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우리나라와 일본의 불꽃 산업 구조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그의 말대로 우리나라에서는 불꽃 산업을 H사―‘불꽃’하면 바로 떠오르는 그 회사가 맞다―가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반면, 일본에는 전국 어디든 불꽃을 제조하는 회사가 있다. 일본연화협회에 가입된 회원사 수만 300개사 이상이니, 47개 도도부현으로 나누어 생각하면 지역당 평균 6개사 씩은 존재한다는 말이 된다. 대부분 중소 규모의 회사다. 불꽃을 만드는 일이 우리나라만큼 희소하지 않기 때문에, 불꽃을 만드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보편적인 말도 존재하는 게 아닐까. 나는 나름의 결론을 내려놓고 흡족해했다.




K씨와의 면담을 마치고 나서는 K씨가 운영하는 회사에서 연화를 만드는 과정을 견학할 수 있었다. ‘불꽃의 고장’ 답게 다이센시 곳곳에서는 연화 모형을 볼 수 있다. 다이센시 중심에 위치한 오마가리역 앞에는 성인 키보다도 큰 연화 모형이 설치돼 있고, 기념품숍에서는 연화 모양의 굿즈를 판매한다. 하지만 실제 밤하늘을 수놓는 연화의 실물을 보는 건 처음이어서 마음이 부풀었다. 연화의 제작은 놀랍게도 거의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 화약을 다루는 일인 만큼 조심히 다뤄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매년 폭발 사고로 인한 인명 피해도 있다고 한다.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또 하나의 이유는 불꽃의 모양 때문이다. 연화 안에 ‘별’을 섬세하게 넣지 않으면 하늘에 쏘아 올려질 때 불꽃의 모양이 망가진다. 불꽃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와리모노(割物)’―원형으로 퍼지는 불꽃을 가리키는 말로, 와리모노는 다시 ‘기쿠(국화)’, ‘보탄(모란)’등의 불꽃으로 세분화된다―를 예로 들자면, 퍼졌을 때 원형이 아니거나, 끝 부분이 이가 빠진 것처럼 움푹 파이는 문제들이 생겨난다. 연화에 대한 설명을 이어가면서 “불꽃을 보러 와주는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완벽한 불꽃을 만들어내야 하는 게 ‘하나비시’의 일”이라고 말하는 K씨의 옆얼굴에서는 장인의 면모가 엿보였다.


K씨가 운영하고 있는 K연화공업은 1885년 처음 문을 열었다. K씨는 5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마찬가지로 ‘하나비시’였던 K씨의 아버지는 다이센시의 다른 ‘하나비시’들과 함께 통일 전 서독에서 불꽃을 쏘아 올린 일이 있다. 불꽃을 쏘아 올리기 직전 함께 간 하나비시 중 누군가 “베를린에는 벽이 있지만, 하늘에는 벽이 없습니다. 불꽃은 어디에서 보나 같은 형태로 보입니다. 서독에 계신 분도, 동독에 계신 분도 함께 즐겨주세요.”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됐기 때문이다. 이 불꽃은 실제 장벽 너머의 동독에서도 보였다고 한다.


불꽃을 올려다보는 사람들은 나이와 국적, 이념과 종교에 상관없이 모두들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고, 불꽃이 평화의 상징으로 오랫동안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데 쓰였으면 좋겠다고 K씨는 말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연화 속의 별들 같다고 생각했다. ‘하나비시’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긍지, 자부심, 그리고 사명감을 꾹꾹 눌러 담아 불꽃을 만들고 있었다. ‘하나비시’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 단순히 ‘불꽃을 만드는 사람’이 아닌 ‘불꽃장인’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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