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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의 솔 Sep 02. 2021

오마가리 불꽃축제 (1) : 축제에 대하여

August, 2016

일본에서는 불꽃놀이를 ‘하나비(花火)’라고 한다. 이 한자를 뜻대로 풀어쓰면 ‘꽃불’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같은 말을 ‘불꽃’이라 부르는 것과 반대다. 나는 우리나라식으로 ‘꽃’을 어미에 두는 게 조금 더 마음에 든다. 꽃 이름의 하나처럼 느껴져서 그런가 보다. 처음 다이센시가 하나비로 유명하단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었다. 일본에서는 해마다 여름이면 전국 각지에서 크고 작은 하나비 행사가 열리기 때문이다. 어느 지역이든 고장을 대표하는 하나비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니, 그저 그 정도의 행사인 줄로만 알았다.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다이센시에서는 매달 크고 작은 불꽃놀이가 열린다. 불꽃놀이가 얼마나 많은지, 시 슬로건이 ‘불꽃의 고장(花火のまち)’일 정도다. 여담이지만 이 지역에는 입학식과 졸업식, 결혼식에서도 불꽃을 쏘아 올리는 풍습이 있다. 내가 다이센시에 와서 처음으로 본 불꽃놀이는 지난 4월 직장에 부임한 직후 개최됐던 ‘오마가리 불꽃축제 봄의 장(大曲の花火 春の章)’이었다. 그때도 대단한 규모라고 생각했는데, 직장 동료들은 입을 모아 여름에 열리는 불꽃놀이가 ‘진짜’라고 했다. 여름을 기대하는 게 좋을 거라고 말하는 그들의 표정에서는 자부심과 자긍심 같은 게 느껴졌다.


매년 8월 마지막 토요일 개최되는 ‘전국불꽃경기대회 오마가리 불꽃축제(全国花火競技大会 大曲の花火)’는 다이센시에서 열리는 불꽃놀이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큰 행사다. 이 축제는 이바라키현의 쓰치우라 불꽃축제, 니가타현의 나가오카 불꽃축제와 함께 일본 전국 3대 불꽃축제로 손꼽힌다. 축제의 역사는 100년을 훌쩍 넘는다. 남아있는 기록에 따르면, 1910년 이 지역 신사에서 개최했던 여흥 불꽃놀이가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도중에 제2차 세계대전으로 잠시 중단된 적이 있긴 하지만, 횟수만 보더라도 90회(2016년 기준)나 된 유서 깊은 축제다.


이 축제의 특별한 점은 전국의 불꽃장인들이 모여 경기(競技)를 펼친다는 점이다. 경기에는 매년 심사를 거쳐 선발된 불꽃업체 28개 사가 참여하며, 우승한 불꽃장인(花火師)에게는 우리나라의 대통령상에 상응하는 ‘내각총리대신상’이 수여된다―하지만 이 상보다도 유수의 불꽃업체 사이에서 최고가 되었다는 영예가 더 크다고 누군가 내게 말해주었다―. 일본 내에서 유일하게 ‘낮 불꽃놀이(昼花火)’가 있다는 점도 다른 축제들과 구별된다. 심사 종목은 총 네 분야로, 낮 불꽃놀이와 10호 연화(10号玉) 2발, 그리고 창조 불꽃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축제를 주최하는  오마가리 상공회의소와 다이센시다.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실제로  축제에 관여하는 단체와 사람의 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먼저 지역공권력이 총동원된다. 경찰서와 소방서, 그리고 시청 직원들은  행사를 위해 불철주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날 하루 동안에만  인구의  배에 가까운 80 관람객이 다녀가기 때문이다. 시청에서는 주로 주차장 관리와 축제장 관리, 교통 통제 등을 담당하는데, 여기에만 1천여  가까운  직원이 동원된다. 내가 소속된 관광교류과는  축제를 운영하는 주무부서로, 축제 이틀 전부터는 거의 모든 직원이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일할 정도였다.


중앙 부처인 국토교통성과 우리나라의 도청에 해당하는 현청에서도 직원을 파견해 교통을 통제하고 운영을 감독한다. 행사 당일에는 불꽃 이름을 붙인 특별 열차가 증편되고, 공영, 민영 주차장 외에도 임시 주차장이 수십 곳 설치된다. 또 국영 방송인 NHK에서는 매년 이 축제의 실황을 생방송으로 송출한다. 축제장 설치를 담당하는 외주업체에서는 축제 한 달 전쯤부터 오모노가와(雄物川) 강변에 유료 관람석과 간이 화장실 등을 설치하고 정비한다. 시내 곳곳에는 주차장과 축제장으로 가는 길을 알리는 임시 간판들이 설치된다. 세어 본 적 없고 셀 수도 없을 것 같지만, 이렇게 ‘간이’, ‘임시’가 붙는 것들은 못해도 수백 개, 많으면 수천 개쯤 될 것 같다.


축제장으로 가는 길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 길들에는 왜인지 과일 이름이 붙어 있다. 예를 들면, 애플 로드, 바나나 로드, 오렌지 로드, 파인애플 로드, 메론 로드하는 식이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언제부터 이런 이름이 붙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 당시 담당했던 사람이 과일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게 아니겠냐고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그렇지 딸기를 빼먹다니 좀 섭섭하다. 사족을 조금만 더 붙이자면, 주차장 안내판은 필요하다 하더라도, 축제장으로 가는 길의 안내판은 불필요할 것 같다는 게 내 견해다. 아마 이 축제를 한 번이라도 찾아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앞서가는 인파를 그저 따라 걷기만 하면 되니까.


한편, 이 시기가 되면 지역 상인과 시민들도 분주해진다. 축제는 단 하루지만, 일주일 전부터 ‘하나비 위크’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 하나비 위크에서 지역 상인들은 야타이(屋台, 일본식 노점상)를 열고 각종 음식을 판매한다. 지역의 시민 동호회나 학생 동아리에서는 시내에 설치된 특설 무대에서 준비한 공연을 선보인다. 마트나 편의점도, 평소 물량보다 더 많은 물량을 준비해 매대에 진열하느라 바쁘다. 전국에 체인을 두고 있는 대형 쇼핑몰인 이온몰에서는 아예 매장 전체의 분위기를 하나비로 바꾸어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숙소에 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호텔의 방 값은 보통 때보다 5배 이상 치솟는다. 그런데도 다이센시는 물론 아키타현, 인근의 이와테현, 미야기현 등의 숙박 시설이 모두 동날 정도여서, 캠핑카나 텐트, 심지어는 일반 승용차에서 쪽잠을 청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 축제를 위해 규슈 남부에서 십수 시간에 걸쳐 운전을 해왔다는 사람도 봤다. 불꽃놀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불꽃처럼 열정적인 사람들만 있는가 보다. 이 정도 열정이 있어야만 불꽃놀이를 좋아할 자격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일본인이었다면 틀림없이 방구석 1열에서 편안히 NHK의 생중계를 보는 편을 택했을 것이다.


관공서에서부터 시작돼 기업과 상인, 그리고 시민들로 이어지는 이 일련의 풍경을 보고 있으면, 굳이 의식하려 하지 않아도 불꽃축제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절로 실감하게 된다. 이 흐름에 화룡정점을 찍는 것은 단연 ‘꿈의 하늘(夢の空)’이다. 이 노래는 오마가리 불꽃축제의 공식 테마송인데, 축제가 가까워지면 시내의 어느 곳에서나 들을 수 있다. 어찌나 울려 퍼지는지, 가사를 찾아본 적 없는데도 길을 걷다가 나도 모르게 ‘舞い上がれ 美しく(날아올라라 아름답게)’하고 따라 흥얼거리게 된다.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는 도무지 믿기 어려운 이 모든 광경이, 다이센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는 익숙하고도 당연하다. 어린아이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누구나 여름이 가까워지면 ‘오마가리 불꽃축제’를 떠올리고, 누구나 이 축제에 관한 추억을 이야기한다. 세대를 아우르는 공통된 기억이 있다는 건 참 근사한 일이다. 이제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사람들, 일 년에 단 한 번, 한여름 밤의 꿈처럼 펼쳐지는 이 축제의 진짜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불꽃장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에 대해서.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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