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먼 우주,
생명체라고 부를 수 있는
살아 움직이는 것들의 흔적이 닿지 않은 곳.
그곳에 행성 하나가 있다.
매 순간 뜨겁게 타오르지만 재가 되지는 않는,
아주 작아서 혹은 너무 멀어서 발견되진 않아도
늘 그 자리에서 타고 있는 그런 행성.
잠시 불길이 옅어질 때가 있어도 결코 꺼지지 않는다.
행성은 자기가 타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한 번씩 자신의 뜨거움이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순간도 있고,
숨 쉬듯 타오르기 위해 필요한 강력한 열 에너지 때문에
어느 날은 자신도 모르게 이유 없이 지치고 무력해질 때도 있지만
이 행성에게 '타오름'은 호흡처럼 자연스러운 일.
그것이 곧 살아 있는 방식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작열하는 행성 앞에 작은 우주선 하나가 나타난다.
어디서 온 건지,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건지, 누가 탄 건지도 모를 그런 우주선.
행성은 그저 스쳐 지나갈 부랑선쯤으로 여기지만,
우주선은 달랐다.
처음 보는 타오르는 행성에 들떠,
아주 호기심 어린 몸짓으로 궤도를 돌며 관찰한다.
"우와, 태양도 아닌데 스스로 타오르는 행성이 있어.
이 행성은 뭘까? 언제부터 타고 있던 걸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보는 우주선.
그저 조그만 행성일 줄 알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불꽃 하나하나 오묘한 색을 내며 타오르는
이상하고 새로운 형태의 행성이라는 걸 깨닫는다.
하지만, 가까이 가면 기체가 녹아버릴 것 같았다.
우주선이 멀리서 외쳤다.
"넌 누구야?
왜 여기서 혼자 최선을 다해 너를 태우고 있어?"
행성이 대답한다.
"너야말로 누구지? 넌 왜 행성처럼 생기지 않았어?
여기 머물러봐. 너도 행성이 될 수 있을지 모르잖아."
뜻밖의 제안에 우주선은 당황하지만
대답을 들었다는 사실만으로 조금 상기된다.
"난 행성이 되고 싶지 않아.
난 블랙홀을 찾는 중이야. 그곳에 빨려 들어가 보고 싶어.
그럼 뭐가 나올까? 넌 상상할 수 있어?"
행성의 불꽃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의아함을 감추려는 듯 오히려 더 크게 불꽃을 키워본다.
그 불꽃에 매료된 우주선은 기체가 녹아내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잊고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선다.
"그런데, 네 불꽃은 정말 예쁘다. 가까이 보면 여러 색으로 빛나.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 너무 빨리 타오르고 있는 것 같아."
처음 들어보는 말들,
처음 마주하는 존재.
행성은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곧 자신의 목표를 다시 떠올린다.
"나는 하루빨리 행성 리스트에 내 이름을 올리고 싶어.
내 불꽃이 얼마나 멋진지 보여줘야 하니까.
이제야 저 멀리 지구라는 곳의 우주인들이 나를 알아보기 시작한 것 같아.
하지만 먼 외계인들이라 그런지 자꾸 나를 오해해.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난 눈에 띄고 싶어서 작열하는 게 아니야.
마땅히 그래야 하니까-
나는 그저 그렇게 존재할 뿐이라고."
행성의 불꽃이 답답하다는 듯 파란색으로 변하다가
이내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선 우주선을 향해 묻는다.
"정말 블랙홀에 들어갈 거야?
어떤 세상이 나올 줄 알고"
그 말을 들은 우주선은 자신의 엔진 소리가 살짝 줄어드는 걸 느낀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게 말하며 타고 있는 행성의 열기가 엔진을 다시 끓어오르게 하는 느낌이다.
우주선이 되물었다.
"넌 계속 그렇게 타오를 거야?
그러다 네가 전부 사라져 버리면 어떡해."
행성과 우주선은 잠시 침묵했다.
고요한 우주 속엔 탁탁 타오르는 불꽃 소리와 작은 엔진의 진동만이 울려 퍼진다.
바로 그때,
행성의 불꽃이 잠시 그림자를 드리우자 그 뒤에서 알 수 없는 빛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불꽃은 아닌 것이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으로
말미잘이 물고기를 부르듯 우주를 부유하며 우주선을 부르는 것 같았다.
우주선은 직감했다.
그것이 자신이 찾아 헤매던 블랙홀이라는 것을.
"봐! 저기 블랙홀이야. 난 저기로 가야 해.
들어가서 만나는 세상에 너의 존재를 알려볼게.
세상에서 하나뿐인 빛을 뿜는 행성이 있다고.
돌아올 수 있다면 돌아올게.
그때까지 조금만 천천히 타올라줄래?
네가 사라질까 봐 겁이 나"
행성은 조용히 타오르며 말했다.
"난 멈출 수가 없어. 멈추는 법을 몰라.
언젠가 저 우주인들과 소통하게 된다면 그때 나도 너의 존재를 알려볼게.
그러니 너도 사라지지 마, 그 뒤에 뭐가 있었다는 걸 꼭 돌아와서 나에게 알려줘."
타오르는 불꽃 사이로 우주선의 그림자가 보인다.
열이 전도되어 빨간빛을 띠는 우주선의 머리 부분이 점점 고개를 돌린다.
우주의 파동이 멀리 서로 다른 모양으로 퍼져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