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배우는 화해의 기술

초보아빠 가이드북


지난번에 썼던 글이 무색하게 오전 내내 아내와 말다툼하고 냉전 상태였다. 엄마 아빠 분위기가 안 좋으니 큼별이도 눈치 보고, 서로 먼저 사과하지 않아서 한참을 등 돌리고 있었다. 싸움의 발단은 아침부터 큼이와 별이가 다투는 바람에 그걸 중재하던 아내가 기분이 상했고, 인상을 찌푸린 채로 식사를 하다가 나는 아내에게 "기분 풀어요."라고 말하고, 아내는 "기분 괜찮아요."라고 반복하다가 말다툼이 시작된 것이다. 정말 별것도 아닌 일로 싸웠다.




식사를 마치고 놀아달라는 별이의 성화도 모른척하고 아내와 나 둘 다 서로를 외면하고 있다가 아내가 "휴대폰이 어디로 갔지" 하며 휴대폰을 찾았고, 싸움이 시작되기 전에 장난을 치려고 휴대폰을 숨겨두었던 내가 벌떡 일어나서 "휴대폰 여기 있어요." 하며 휴대폰을 찾아주다가 불현듯 웃음이 터져 나왔다. 불편했던 상황을 빨리 해소하고 싶었는데, 휴대폰을 찾고 찾아주면서 대화를 다시 시작하게 된 상황이 어색하고 코믹했었다. 어쩌면 뭔가 서로 말을 걸 핑곗거리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우리는 별것도 아닌 말에 웃음을 터뜨리고 다시 화해했다.




그리고 그날 우리는 친구 가족과 함께 저녁 무렵 금릉 바닷가에 놀러 가서 아름다운 석양과 바다, 비양도를 바라보면서 치킨을 먹었다.







하루 종일 싸웠다면 놓쳤을 풍경이다.




만약 우리 부부의 냉전기간이 길어졌다면 이렇게 아름다운 노을도 보지 못할 뻔했다.




바다에 와서 신났는지 별이와 친구인 지미는 모래놀이도 하고, 바다에서 꽃게를 잡고 신나게 뛰어놀았다. 그러다가 서로 먼저 가겠다가 몸을 부딪치고 0.1초도 안되어서 말싸움이 시작되었다. 방금 전까지 바다에서 세상 둘도 없는 친구처럼 사이좋게 놀던 4살 동갑내기 별이와 지미가 지금은 별것도 아닌 일도 다신 안 본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싸운다. 급기야 서로 "우리 집에 놀러 오지 마!" 하며 소리친다. 엄마가 와서 달래주니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바로 "미안해, 사랑해. 다음에 또 놀자." 하며 화해한다.




다신 안 볼 것처럼 소리 지르며 싸우다가도 금방 기분이 풀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 부부도 자존심을 부리지 말고 빨리 서로 대화했다면 귀중한 오전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을 텐데 생각했다.




그나마 하루 종일 싸우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랬다면 이렇게 아름다운 노을을 보지 못했을 테니까.




아이들을 보면서 뭐가 저렇게 쉬울까?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언젠가 봤던 아이들이 주인공이 영화 "우리들"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여주인공은 남동생이 한 명 있는데, 이 남동생이 단짝 친구에게 항상 맞고 집에 돌아왔다. 하루는 또 친구에게 맞고 돌아온 동생에게 답답한 마음에 왜 맞으면서도 친구랑 노는지 묻는다.







"야, 넌 왜 맨날 맞으면서 그 친구랑 놀아?"


"아냐, 이번에는 나도 때렸어!"


"때리고, 다시 맞았어?"


"응, 친구가 나 때리고, 나도 그 친구 때리고,


다시 친구가 장난감으로 내 눈을 때렸어!


그리고 같이 놀았지!"


"아니, 바보야 맞았으면 다시 때려야지!!!"


"그럼 언제 놀아?"


"응? 뭐라고?"


"친구가 나 때리고, 나도 친구 때리고, 친구가 나 때리고, 나도 다시 때리면


그럼 언제 놀아? 난 놀고 싶은데."






상대방이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나도 계속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려고만 한다면 화해할 수가 없다. 사실 우리는 같이 놀고 싶은데.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 싸우지 않고 사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누군가 한쪽이 항상 양보하고 사는 것도 감당하기 힘들다. '그냥 내가 참고 살고 말지'는 관계를 개선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왕 싸울 거라면




빨리 싸우고, 빨리 화해하자.




가능하다면 하루를 넘기지 말자. 예전에는 아내와 다투고 나면 둘 중 한 명이 밖에 나가버리거나 나 혼자 잠들어버리곤 했었다. 싸움이 점점 격해지고 그 순간 서로 꼴도 보기 싫어서 그 상황을 회피했었다. 그렇게 싸우는 순간 도망을 가면 누군가는 화가 풀릴 수도 있지만 한쪽은 화가 더 쌓일 수도 있고, 대화하지 않고 넘어가버리면 마치 치료되지 않은 병처럼 나중에 한꺼번에 터질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싸우더라도 동굴에 혼자 들어가지 말고 대화를 하기로 했다. 너무 감정이 격해지면 잠시 진정하기 위한 시간을 갖지만 꼭 나중에라도 대화를 했다. 만약 너무 화가 나서 도저히 대화가 어렵다 생각이 된다면 좋은 방법이 있다. 서로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다. 말로 주고받을 때는 감정이 격해지지만 혼자 편지를 쓰다 보면 마음이 진정되고 상황이 객관적으로 보인다. 그리고 내가 말을 하는 동안은 상대방이 바로바로 반박을 하게 돼서 생각이 채 전달되기도 전에 끊어지곤 한다. 하지만 편지를 쓰는 순간에도 원 없이 내 생각을 다 표현할 수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라면 시작되는 광고 노래는 잘못되었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도 말해야 안다. 그것도 백번 천 번 반복해야 한다.




다음번에도 아내와 다투는 일이 생긴다면 바닷가에서 봤던 4살 동갑내기 친구의 화해하던 모습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순식간에 웃으며 먼저 사과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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