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
제주가 마음에 들어오고 난 이후에는 모든 것이 제주에서 살아야 할 이유가 되었다.
우선 등산을 좋아하는 내게 제주도는 한라산이 있는 섬이었고, (하지만 정작 제주도로 이사오고 한라산에 오른 횟수는 손에 꼽는다.)
어느 날, 서울의 관악산을 올라서 내려다 본 서울 하늘에는 검은 돔으로 둘러쌓여있었다. 아직 미세먼지가 뉴스에 나올만큼 이슈가 되지 않았던 때였다. 그럼에도 이미 서울은 매연으로 가득한 동네였고, 나는 때마침 공기좋은 시골에서 군생활을 하고 돌아와서 공기의 질이 얼마나 건강에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제주도 공기는 정말 좋다. 하지만 이제 미세먼지는 제주도까지 침범했다. 그리고 자연이 좋은 만큼 봄이면 꽃가루와 삼나무 가루로 인해 알레르기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가족도 알레르기가 심하다.)
공기가 좋은 곳에서 살고 싶어서 제주도에 간다고 말하면 대뜸 "공기가 밥 먹여주냐?" 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별이 보이는 곳에서 자녀들을 키우고 싶었다. 서울의 밤은 가장 반짝이는 북극성 하나도 보기 힘들다. 하지만 제주도라면 분명 밤하늘 가득 별이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제주도는 정말 별이 가득하다.)
무엇보다도 제주도는 그때만 하더라도 집값이 저렴했다. 24평 주공아파트가 4천만원으로 매매되던 때였다. 결혼을 하기 전에 서울에서 집을 구하려면 어느정도 돈이 필요한 지 알아보았는데, 4천만원으로는 10평짜리 다세대주택 전세도 어림없었다. 지금은 불가능한 이야기이지만 제주도에 빈집이 많아서 마당에 잡초들만 관리해주어도 집을 공짜로 빌려주는 시기도 있었다. 제주에서라면 2년마다 메뚜기처럼 이사다녀야 하는 전세살이를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집값 폭등은 제주도까지 영향을 미쳤고, 우리 가족은 제주에서도 2년마다 이사를 다녔지만, 결국 내 집 장만의 꿈을 이뤘다.)
카페를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가졌었는데, 제주에서라면 카페를 창업할 수 있을거란 희망을 가졌었다. 꼭 카페가 아니더라도 게스트하우스, 귤농장 등등 건물들이 가득한 서울에서 평생을 살아온 청년의 눈에 제주도는 기회의 땅으로 보였다. 창업을 하지 않더라도 제주도에 있는 다음커뮤니케이션에 취업할 수 있을거라는 대책없는 자신감도 있었다. (카페 창업은 하지 않았고, 더치커피, 모카포트, 핸드드립, 캡슐커피 등등 모든 홈카페 도구를 섭렵했다. 게스트하우스는 아니지만 숙박업에도 잠시 종사하고, 귤농장에서도 알바를 했었고, 인터넷으로 귤 판매도 하고,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도 1년정도 아르바이트를 했다.)
제주도에 가면 1년 365일 바다를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제주에 살아야 하는 이유였다. 중문바다에서 파도를 타는 서퍼들의 자유로움을 동경했다. 그래서 제주도로 이사가기 전에 수영장을 등록하고, 수영 능력을 획득했다. (제주에 오기 전에 수영을 배운 건 신의 한수였다. 수영을 할 줄 아는 사람에게 제주도는 커다란 워터파크다. 서핑도 즐겁게 배웠지만, 나는 서퍼의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내려놓았다.)
제주도에 살아야 하는 이유 하나 더 추가. 제주도는 귤의 나라이고, 나는 귤을 좋아한다. (제주에 이사오고 정말 원없이 귤을 먹었다. 지금도 우리 집 베란다에는 한라봉과 천혜향, 레드향이 쌓여있다.)
제주에 살고 싶어서 이유를 찾은 것인지
제주에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어서 제주로 온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