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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주 Nov 01. 2017

금리인상이 두려운 이유

폭탄은 밑에서 터진다.

우리에겐 떠올리조차 두려운 두개의 기억이 있다.

10년 전의 금융위기와 20년 전의 외환위기다.

그런데 각각의 위기에서 금리의 방향은 정반대였다.

1997년의 외환위기 때에는 20%가 넘는 고금리에 시달렸지만, 2007년의 금융위기 때에는 오히려 제로금리에 가까운 혜택을 누렸다. 이유는 간단하다.


1997년의 외환위기(달러보유 바닥)는 미국의 문제가 아니었다. 동남아, 특히 한국의 문제였다.

그때 미국은 돈 줄(달러)를 쥐고 휘둘렀다.

반대로 '서브프라임'에서 촉발된 2007년의 금융위기는 미국에서 터졌다. 세계의 돈 공장 미국은 달러를 무한리필했고 덕분에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금리는 바닥을 기었다.


그러나 두가지 위기의 더욱 극명한 차이가 있다.

20년 전의 외환위기가 위에서 터진 폭탄이었다면, 10년 전의 금융위기는 밑에서 터진 폭탄이었다는 사실이다.

즉, 1997년의 외환위기가 OECD가입, 자본시장개방 등 그 당시 한국의 경제적인 체력을 무시하고 밀어부친 정치적 우매함이 가져온 혹독한 시련이었다면, 2007년의 금융위기는 자본주의적 탐욕이 곪고 곪아 너도나도 집 값보다 더 많은 부채를 빌려 구입한 주택의 거품이 빠지면서 터진 '서브프라임'의 결과였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2017년 6월 말 기준, 우리나라 가계부채 1439조원 가운데 70%에 육박하는 938조원이 주택담보대출이다.

그것만 보면 1997년의 외환위기보다 2007년의 서브프라임에 가깝다.

그러나 집값과 대출금액 사이에 여유가 있다는 점에서 서브프라임은 분명 아니다.

반면, 가계부채가 미국의 문제가 아닌 한국의 문제라는 점에서는 1997년의 외환위기를 연상케 한다. 또한 그때처럼 금리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그러나 그때보다 10배 넘는 외환(달러)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그것도 분명 아니다.


그런데 두개의 위기에 변함없는 공통점이 있다.

고통은 항상 서민들의 몫이라는 점이다.

또한 그 고통은 금리인상이 본격화되면서 2017년 가을의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금리인상의 불똥은 단지 주택담보대출이자나 이런저런 대출이자가 늘어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필자가 이것을 밑에서 부터 터지는 폭탄, 2007년 서브프라임이 변형된 새로운 형태의 금융위기로 부르는 이유다.


실제로 금리오름세는 참 가파르다.

아직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는 인상되지도 않았는데, 시중은행의 대출금리는 그보다 앞서 달려간다.

주택담보대출만 해도 5%가 넘는 상품을 찾는 일은 어렵지으며 은행 창구마다 심각한 표정으로 순서를 기다리는 대출자들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기존대출을 연장해 주지 않으면 어쩌나... 일부상환을 요구하면 그 돈은 또 어떻게 마련하나...대출이자는 무조건 올라 가겠지? 가뜩이나 생활비가 부족한데, 어디서 또 줄여야 하나...


답답하기는 은행원도 마찬가지다.

대출자의 표정을 쳐다보면 시선을 피하고 싶은데, 상급자의 지시는 단호하고 명쾌하다.

"연체나 부도는 충당금을 충분히 쌓아 두었으니 걱정하지 말고 이자는 올려 받아라."


금리인상을 틈타 예대마진, 즉 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는 벌써 2.8%까지 벌어졌다.

은행들 마다 사상 최대의 실적을 개선하고 있지만, 앞으로의 대출규제를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이익을 확실히 챙겨두어야 한다. 은행은 '허가받은 고리대금업'이라는 세간의 비난에 신경쓸 겨를이 없다.

새삼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지만, 그것 때문에 짤린 임원이나 은행원도 없었다.

결국 모든 짐은 대출자가 온전히 떠안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 신용불량에, 압류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정말 이래도 되나싶은 생각이 드는 이유는,

1997년, 2007년과 마찬가지로 금리인상의 칼날이 지금도 여전히 경제적 약자, 서민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지난 5년 동안 부채가 가장 많이 증가한 연령대는 20-30대 청년이다.

특히 30대는 신용대출이 가장 많이 늘어났다. 극심한 취업난과 주거비 상승의 영향때문이다.

남성보다 여성의 부채증가율이 더 높아졌고, 60세 이상 노인층의 경우, 부채원리금 상환금액 증가율이 196.3%로 전체 가구의 부채원리금 상환금액 증가율 94.7%의 2배가 넘는다.

주거형태별로 따져보면, 자가 소유자보다 전세거주계층의 부채항목 증가율이 더 높게 나타났고 부채 원리금 상환금액도 전세거주계층에서 더 빠르게 증가했다.

소득대비 원리금상환액 비율도 서울보다 지방이 더 높고, 특히 선진국의 2.5배에 달하는 한국의 자영업자 상당수가 가계부채에 시달리는 현실에서 금리인상의 직격탄은 자칫 이들을 거리로 내 몰 수도 있다.

물론 가계부채는 심각하다.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2016년을 기준으로 세계 8위에 올라 있다.

2011년 13위에서 해마다 등수를 높혀왔으며 가계부채가 증가하는 속도 역시 심각하다.

2012년 17위에서 3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가히 동메달급이다.

특히 10년 전, 금융위기 이후 유독 대한민국의 가계부채만 증가했다고 하니, 우리에겐 이름만 들어도 끔찍한 IMF(국제통화기금)마져 경고하고 나섰다.

그러니 마냥 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왜 항상 서민들일까?

예컨대, 그들의 손에 들린 갤럭시폰으로 삼성전자의 올해 이익이 50조원을 훌쩍 넘겠다는 뉴스를 읽고, '대출받아 집사세요'했던 은행들이 이젠 오히려 '집 팔아서 빚 갚으세요' 단계를 넘어 '빨리 안 갚으면 대출이자 왕창 올린다'는 협박이 난무하는 사이로 은행이익이 사상 최대라는 소식을 들으면서, 우린 어쩐지 '호갱'이 되어가는 기분은 단지 필자만의 느낌일까?


그렇다고, 이같이 축축한 기분을 앞세워 가계부채 문제를 이대로 덮어 두자는 것은 아니다.

금리인상의 직격탄을 맞아야할 경제적 약자들을 위한 현실적인 정책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사람들이며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정부정책에 순응해 왔으며 사상최대라는 은행의 이익에 이바지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이 더욱 중요한 이유는, 금리인상으로 인해 대다수 서민들의 줄어든 가처분소득이 소비위축으로 이어지면서 천천히, 그리고 장기적인 경기침체를 불러 올 수 있기 때문이다. 폭탄은 밑에서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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