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할 수 없는 세상에 맞서는 의식
확인했다
분명히 확인했다
현관문 도어락
보낼 물건 수량
글자의 오타확인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졌다
그런데 뒤를 도는 순간
기억이 증발한다
‘진짜 잠겼나?’
그 생각이
내 발목을 잡는다
다시 돌아간다
다시 만진다
다시 본다
이건 확인이 아니다
의식이다
“확실해?”
강박이 물었다
나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응. 봤잖아. 잠겼어.”
“아까도 봤잖아.
근데 다시 왔잖아.
이번엔 진짜 확실해?”
강박의 질문은
논리가 없다
그냥 가능성을 던진다
순간의 불행
그 틈새를 파고든다
나는 다시 문고리를 잡았다
철컥, 철컥, 철컥.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이 숫자를 채워야
강박이 물러가니까
“이제 됐어?”
내가 묻자
강박은 그제야 시큰둥하게 말했다
“일단은.”
강박은
나를 성실한 관리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를 ‘신이 되려는 자’라고 비웃는다
어느 날 밤
지쳐버린 내가 강박에게 물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그냥 넘어가도 아무 일 안 생기잖아.”
강박은 내 침대 맡에 앉아
천장을 보며 말했다
“너는 세상을 못 믿으니까.”
“세상을 못 믿어?”
“응.”
“너는 네 손을 떠난 일들이
알아서 잘 굴러갈 거라고 믿지 않아.”
강박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너는 이렇게 믿는 거야.”
“네가 통제하지 않으면,
반드시 나쁜 일이 생길 거라고.”
그 말에
말문이 막혔다
맞다
나는 우연을 혐오한다
나는 운을 믿지 않는다
모든 변수가
내 계산 안에 있어야 안심이 된다
그래서 나는
물건의 줄을 맞추고
숫자를 세고
순서를 정한다
그게 내가
이 거대한 혼돈의 세상에서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나만의 작은 질서니까
“너는 겁쟁이야.”
강박이 말했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게 무서워서,
오늘 방문을 세 번 확인하는 걸로
그 불안을 막아보려는 거지.”
“그건… 미신이잖아.”
내가 반박했다
“맞아. 미신이야.”
“근데 너한테는 종교잖아.”
나는 인정해야 했다
나의 강박은
완벽주의가 아니었다
그건 '부적'이었다
내가 이 선을 넘지 않으면
내가 이 의식을 치르지 않으면
내 삶이 무너질 거라는
슬프고 간절한 부적
“그만하고 싶어.”
내가 말했다
“너무 피곤해.
머릿속이 시끄러워서 미치겠어.”
강박이 차갑게 웃었다
“그럼 그냥 둬.”
“뭐를?”
문이 열려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가스가 샐지도 모른다는 공포
실수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그걸 그냥 두라고?”
“그러다 진짜 큰일 나면?”
“그럼 그때 수습해.”
강박은 나를 빤히 쳐다봤다
“너는 사고가 날까 봐 무서운 게 아니야”
사고가 났을 때,
‘내가 확인하지 않아서’라는
죄책감을 뒤집어쓸까 봐.
“그게 무서운 거지.”
정곡을 찔렀다
나는 실패가 두려운 게 아니라
내 통제 밖의 실패를 용납 못 하는 것이었다
그날
나는 실험을 했다
현관문을 한 번만 닫았다
다시 확인하고 싶은 충동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안 잠겼으면 어떡해?
‘도둑 들면 네 책임이야.’
강박이 소리쳤다
나는 신발을 신으며
중얼거렸다
“들어오라 그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등 뒤가 서늘했다
당장이라도 뛰어가서 문고리를 돌려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냥 나가 걸었다
불안을 해소하지 않고
불안을 주머니에 넣은 채로
확인하지 않은 채로
세상 속에 나를 던져두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집에 돌아왔을 때
강박은 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살아있네?”
강박이 물었다
“어. 살아있어.”
강박은 조금 실망한 눈치였지만
동시에 안도하는 것 같았다
“너는 이제 알겠지.”
강박이 말했다
“네가 통제하지 않아도
지구는 돈다는 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리고 내가 신이 아니라는 것도.”
강박은 사라지지 않는다
여전히 내 귓가에 속삭인다
‘확실해?’
하지만 이제 나는
세 번 확인하는 대신
한 번 웃고 넘긴다
“글쎄. 아님 말고.”
불확실함을 견디는 힘
그게 진짜 안전이었다.
강박은 완벽주의가 아니다.
통제할 수 없는 세상을
내 작은 질서로 막아보려 했던
가장 겁 많은 기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