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

그것은 나약함이 아니라, 긴급한 '강제 전원 차단'

by 베레쉬트

몸이
물 먹은 솜처럼 무겁다


일어나야 하는데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다


머리는 아우성친다


“일어나.”
“씻어.”
“나가야지.”


“이렇게 살면 안 되잖아.”


하지만 몸은
바닥과 한 몸이 되어
꿈쩍도 않는다


사람들은 말한다


“의지가 약해서 그래.”
“생각이 너무 많아서 그래.”
“나가서 햇볕 좀 쬐고 걸어.”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내 안에서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를 듣는다


‘그래, 내가 문제지.’


‘남들은 다 잘 사는데

나만 이 모양이지.’


우울함보다 더 괴로운 건

우울해하는


나 자신을 향한
혐오다





나는 우울과 싸우려 했다


억지로 몸을 일으키고
억지로 웃어보고
억지로 긍정적인 책을 읽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애를 쓰면 쓸수록
더 깊은 늪으로 빨려 들어간다


더 힘을 주고

더 노력할수록


더 발버둥 칠수록
더 빠르게 잠겨간다


왜일까


왜 내 몸은
내 말을 듣지 않을까


나는 내 몸이
고장 났다고 생각했다


나를 공격하고 있다고 믿었다






집에 불이 날 뻔한 적이 있다


전기를 너무 많이 써서
과부하가 걸렸을 때였다


그때
‘탁’ 하고

두꺼비집(차단기)이 내려갔다


집안의 모든 불이 꺼졌다


냉장고도, TV도, 컴퓨터도
모두 멈췄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나는 짜증을 냈다


“아, 왜 이래!”





정전이었다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


어느 날

뉴스에서 불이나고 있는

집을 보며 생각났다


그때 차단기가 내려가지 않았다면

전선이 타버려
집 전체가 불탔을 것이다





차단기는
나를 괴롭히려고 꺼진 게 아니었다



나를 살리려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전기를 막은 것이었다







우울은

내 몸의 두꺼비 집이었다


내 환경이

내 삶이


내 주변이 나를 몰아쳤다


남들 눈치 보느라
열심히 살았고


완벽해지려고 애쓰느라


내 안은
이미 과열되어
연기가 나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죽어.”
“더 이상은 무리야.”


몸이 보내는 신호를
내가 의지로 무시하자


결국 내 몸은
최후의 수단을 쓴 것이다



“강제 종료.”



그것이 우울이다.



생각을 끄고
감정을 끄고
욕구를 끄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들어서
기어이 나를 쉬게 만드는


가장 과격한
구조 신호



나는 나를 미워했는데
내 몸은 나를 살리려고


이 욕을 먹어가며

버티고 있었구나


내가 게을러서

누워있는 게 아니라


지금 충전 중이구나





아주 긴급한 충전 중





그러니
억지로 일어나려 하지 마라


차단기가 내려갔는데
억지로 스위치를 올리면


그땐 진짜 불이 난다


그냥
편안히 있어라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아무도 만나지 않아도 된다


울고 싶으면 울고
자고 싶으면 자라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


지금 내가

해야 할 유일한 일은



자신을 내버려 두는 것이다






겨울잠을 자는 곰을 보고
게으르다고 욕하는 사람은 없다


살아남기 위해
모든 대사를 최소화하고

숨만 쉬는 시간이니까


나는 지금
인생의 겨울을 지나고 있다


이것은 멈춤이 아니라
생존이다


언젠가
내 안의 과열된 열기가 식으면


그리고 다시 에너지가 차오르면


두꺼비집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탁’ 하고
다시 올라갈 것이다.


그때까지는
그냥


아프지 않게
숨만 쉬어라


우울은
나의 나약함이 만든 병이 아니다.


너무 치열하게 살아온 나를
죽지 않게 지키려는




몸의
가장 필사적인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