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감정이 아니다 견고하던 나의 세계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나는 사랑을 너무 쉽게 말했다
설레는 것
행복해지는 것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하지만 사랑을 겪을수록
사랑은 그런 말들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사랑은
내가 오랫동안 지켜온 세계가
어느 날 갑자기
내 뜻과 상관없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일이다
그것은
기쁨보다는 혼란에 가깝고
행복보다는 붕괴에 더 닮아 있다
사람은
자기 안에 머무는 존재다
내 기준으로 느끼고
내 안전을 먼저 계산하며
내가 다치지 않는 쪽으로 움직인다
이건 이기심이 아니다
살아 있기 위해 몸에 새겨진
기본적인 방향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삶은
‘나’라는 울타리 안에서
조용히 완결된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는 있어도
그 고통이 내 하루를 무너뜨리지는 않는다
사람은 각자의 세계를 가진 채
서로를 바라보는
외로운 존재들이다.
그런데
아주 가끔
이 구조가 깨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원하지도 않았고
준비하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내 안으로
타인의 삶이 들어와 있다
그의 피곤이
내 몸을 먼저 가라앉히고
그의 불안이
내 잠을 흔든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미 영향받고 있다
내 감정이 아닌데
내 감정처럼 느껴진다
그때 사람은
이 상태를
사랑이라고 부른다
사랑은
감정이 먼저가 아니다
사랑은
경계가 먼저 무너진다
나와 너를 나누던 선이
조용히 흐려지고
그 자리에
타인의 삶이 스며든다
그래서 사랑은 늘 불편하다
판단이 느려지고
선택이 흔들리고
나답지 않은 행동을 하게 된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나는 점점
덜 '나'다워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 지점에서 묻게 된다
왜 이렇게 힘든 걸까
대답은 이상하다
사랑은
나를 유지하던 방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상한 일은
여기서부터다
이렇게 불안하고
이렇게 손해 같고
이렇게 비효율적인 상태를
사람은 굳이 반복한다
시간을 쓰고
마음을 쓰고
심지어 자신을 깎아내면서까지
살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자기 보존을 내려놓는 순간들
이건 본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어쩌면 사랑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넘어가도록
설계된 유일한 통로인지도 모른다
‘나’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세계로
억지로 끌어내는 사건
그래서 사랑은
행복을 약속하지 않는다
대신
혼자만의 세계에
영원히 갇혀 사는 삶을
막아준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다
거래도 아니다
사랑은
내 삶의 중심을
잠시 비워두는 선택이다
완전히 버리지도 않고
끝까지 붙잡지도 않는 상태
그 불안정함 속에서
인간은 처음으로
자기 밖의 세계를
실제로 경험한다
그래서 사랑은
아름답다고만 부르기엔
너무 거칠고
너무 위험하다
사랑은
나를 무너뜨리고
나를 바꾸고
나를 다시 배열한다
그 침범을
기꺼이 허락하는 것
그것이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드문 용기다
사랑은
행복을 주지 않아도 괜찮다
나 혼자만의 세계로
되돌아가지 않게 해 준다면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