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관계는 어떤 관계일까

29화

by 베레쉬트


많은 사람은
조건 없는 자리를
원한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곳,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남아 있어도 되는 자리.


이런 말을
원하고 바란다.


그런데
막상 그런 자리가 눈앞에 오면


사람은
이상하게 불안해진다.


의심하고,
거리 두고,
생각한다.


“언제까지일까.”


“왜 나한테 이럴까.”


“무엇을 바라는 걸까.”





조건이 없다는 말은
따뜻하게 들리지만,


몸에는
위험 신호처럼
울리기도 한다.


왜일까.






사람은
조건 없는 자리를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에게
관계란
항상 거래였다.


잘하면 유지되고,
못하면 흔들리고,


필요 없으면
정리되는 것.


그래서 몸은
관계를 이렇게 기억한다.


“아무 이유 없이
남아 있는 건 없다.”








이 기억은
논리가 아니다.


설명으로 바뀌지 않는다.


몸과 감각이 만든 결론이다.


그래서 조건 없는 자리는
위험하다.


이유가 없다는 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뜻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람은
예측 가능한 고통을


예측 불가능한 안정감보다
더 안전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적어도
언제 상처받을지는
알 수 있으니까.










그래서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조건을 만든다.


괜히 일을 더 하고,
괜히 설명을 붙이고,


괜히 스스로를
쓸모 있게 만든다.


그렇게 하면
관계가 유지되는 이유를


자기가 쥐고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방식에는
대가가 있다.


조건 위에서 유지되는 관계는
결국


조건이

자기 자신을
통제하게 된다.


멈출 수 없고,


쉴 수 없고,


실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이 방식을 쉽게 놓지 못한다.


조건 없는 자리는
너무 낯설어서.








조건 없는 자리에서는


자기를 방어하던
모든 기술이
쓸모없다.


참는 법도,
맞추는 법도,


잘하는 법도
작동하지 않는다.


그 자리는
그저
존재만 요구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사람은
두려워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정말로 남겨둘까.”


이 질문에
몸이
확신을 가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조건 없는 자리를
찾으면서도
끝까지 들어가지 않는다.


문 앞에서

생각과 마음은
항상 서성이고 있다.






서성이는 내가 먼저


내 문을


열어 논 적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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