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사람은
타인을 이해하는 데는
생각보다 빠르다.
상황을 보고,
표정을 읽고,
말의 분위기를 느낀다.
그런데
자기 자신 앞에만 서면
시선이 흐려진다.
감정은 있는데
이유가 없고,
행동은 했는데
설명이 늦는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자주 오해한다.
“내가 왜 이런지 모르겠다.”
“나는 원래 이랬던 사람인가 보다.”
“내가 이상한 것 같다.”
이 오해에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사람은
자기를 관찰하는 존재이기 전에
자기를 통과해
살아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타인은
거리 두고 볼 수 있다.
자기는
항상 안에 있다.
눈이
자기 눈을 볼 수 없듯,
사람은
자기 내부의 출발점을
직접 볼 수 없다.
그래서
사람은 늘
중간 장면부터 기억한다.
화가 난 순간,
울음이 터진 순간,
포기한 순간.
그 이전의
미세한 흔들림은
대부분 사라진다.
몸이 먼저 반응하고,
감정이 방향을 만들고,
생각이
이유를 만들어 붙인다.
생각은
설명하는 자다.
설명하는 것이
나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 생각을
자기 자신이라고 착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걸 보니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하지만 생각은
도착지에서 쓰인 메모에 가깝다.
출발지는
더 아래에 있다.
몸의 긴장,
익숙한 불안,
사라지지 않은 기억.
그것들이
말없이 방향을 정한다.
사람이
자기를 가장 늦게 이해하는 이유는
생각이 자신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너무 오래
자신을 생각으로 버텨왔다.
버티는 동안
사람은
자기를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도구로 쓴다.
움직여야 하고,
해내야 하고,
멈추면 안 되기 때문에.
그래서
자기를 이해하는 일은
대부분
무너진 뒤에 시작된다.
더 이상
밀어붙일 수 없을 때,
비로소
자기 안을 내려다본다.
그리고 그때
놀라운 장면을 본다.
“나는 생각보다
많이 참아왔다.”
“나는 선택한 게 아니라
견뎌왔다.”
“나는 몰랐던 게 아니라
볼 여유가 없었다.”
자기 이해는
통찰에서 오지 않는다.
속도를 낮출 때 온다.
질문을 바꿀 때 온다.
“왜 나는 이러지?”가 아니라
“나는 어떤 상태였지?”
그 질문 하나가
자신을 마주하는
진실을 보게 된다.
다음 화에서는
내가 하는 생각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생각의 진실을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