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사람은
충분함을
판단하지 못한다.
능력이 아니라
감각의 문제다.
“이 정도면 충분해.”
이 문장은
사실
기술적인 문장이 아니다.
기준의 문장이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 기준을
오래 들여다보지 않는다.
대신
빌린 기준으로
살아왔다.
부모의 말,
사회가 정한 속도,
비교 속에서 만들어진 평균.
그 기준들은
대부분
끝이 없다.
조금 더,
조금만 더,
아직은 아니야.
그래서 사람은
충분해졌을 때도
멈추지 못한다.
멈추는 순간
뒤처질 것 같아서.
사람은
충분함을 말하는 순간
포기처럼 보일까
두려워한다.
그래서
멈추지 않는 자신을
성실함이라 부른다.
하지만 그 성실함은
종종
불안을
연료로 쓴다.
불안은
속도를 만든다.
속도는
판단을
지운다.
판단이 사라진 자리에
습관만 남는다.
그 습관이
사람을
앞으로 데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자리를
돌게 한다.
충분함은
결과로 오는 게 아니다.
도착해서
느끼는 것도 아니다.
충분함은
선언이다.
“여기까지도
나로서
괜찮다.”
이 선언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을
조건부로
허락해 왔기 때문이다.
잘하면 괜찮고,
해내면 괜찮고,
증명되면 괜찮은 존재.
이 안에서는
충분함이
성립하지 않는다.
항상
다음 조건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충분해지기 직전에도
자기를
밀어낸다.
부족해서가 아니라
멈추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멈춤은
게으름이 아니다.
기준을
자기 안으로
되돌리는 일이다.
사람이
‘이 정도면 충분하다’를
말할 수 있게 되는 순간은
성과가 쌓였을 때가 아니다.
자기 존재를
성과에서
분리했을 때다.
“나는 결과보다 먼저
여기 있다.”
이 문장이
사람을
지켜준다.
충분한 건 없다.
충분함이란
문장으로 지나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