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바꾸고 싶은데 바뀌기 어려울까

26화

by 베레쉬트


사람은
행복한 곳에 머무르고 싶다.


하지만
사람은
익숙한 곳에 머무른다.


그 익숙함이


아프든,
불편하든,
지금의 삶을 유지하든
상관없다.


몸이
“여기는 알고 있다”
기억하는 자리.




그게
사람이 말하는
안전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계속 같은 관계로 돌아가고,
같은 방식으로 상처받고,
같은 선택을 반복한다.


겉에서 보면
이해되지 않는다.


“왜 또 거기로 가?”
“이번엔 다를 줄 알았는데.”
“그렇게 힘들다면서 왜 떠나지 않아?”


하지만 몸은
다르게 대답한다.


“여긴
예측 가능하다.”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감이 알고 있다.”




인간의 몸은
행복보다
예측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행복은
불확실하지만,


익숙함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 사람은
환경을 고를 수 없다.


대신
적응한다.


사랑이 조건부였다면
눈치를 배운다.


무시가 잦았다면
스스로를 낮추는 법을 배운다.


위험했다면
먼저 공격하는 법을 배운다.


그 방식은
그 시점에서는
사람을 살렸다.


그래서 몸은
그 방식을
‘안전’으로 저장한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도


그 저장이
지워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환경이 바뀌어도
몸은
여전히 옛 반복을 쓴다.


그래서 지금의 관계에서
과거의 감각이 튀어나오고,


지금의 선택에
오래전 두려움이 섞인다.





사람은
현재를 사는 것 같지만


몸은
항상 과거를 기준으로
안전을 계산한다.


이걸 모르면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자주 오해한다.


“나는 왜 이렇게 걱정하지?”


“왜 좋은 기회 앞에서 망설이지?”


“왜 더 나은 선택을 스스로 못하지?”


그건
약해서가 아니다.


몸이 아직
그 자리를


안전하다고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전은
말로 설득되지 않는다.


“괜찮아.”
“이제는 달라.”
“이번엔 안전해.”


이 말들은
생각에는 닿아도
몸에는 닿지 않는다.


몸은
오직 경험으로만
다시 배운다.


그리고 그 경험은
아주 느리게
쌓인다.




그래서 사람의 변화는
항상


주변에서 보기엔
별로 다르지 않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사람 안에서


가장 신중한 작업이
진행 중이다.


안전을 옮긴다는 건


삶의 주소를 옮기는 일이다.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몸에게는


그 이사가
쉽지 않다.


그래서 사람은
떠나기 전까지
오래 머뭇거린다.




떠날 준비가 안 된 게 아니라,


몸이
새로운 자리를


아직 ‘집’으로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제는


몸의 기억을


바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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