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사람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은
대단하지 않다.
각오가 생겨서도 아니고,
용기가 갑자기 차올라서도 아니다.
대부분은
아주 사소한 신호 하나 때문이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침묵 속의 기다림,
아무 판단 없는 눈길.
그 신호의 공통점은 이것이다.
“너를 보고 있다.”
조언이 아니다.
해결책도 아니다.
그저
사라지지 않았다는 확인.
사람은
이 신호를 받기 전까지
움직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은 방향을 잃어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가
아무 데도 닿지 않는다고 느낄 때
멈추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때는
아무리 생각을 정리해도
다시 걷지 못한다.
생각은
방향을 만들어도
발을 떼게 하지는 못한다.
발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확신이 아니라
연결의 감각이다.
“이 한 걸음이
어딘가에 닿아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이 생기는 순간,
사람은
아주 조심스럽게
다시 움직인다.
이때의 걸음은
빠르지 않다.
눈에 띄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걸음은
되돌아가는 걸음이 아니다.
그건
다시 삶에 붙는 걸음이다.
흥미로운 건
이 신호가
반드시 사람의 형태일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문장 하나,
음악 한 소절,
기도 같은 바램,
혹은
자연의 리듬.
중요한 건
그것이
나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해야 해.”
“빨리 나아져야 해.”
이런 요구가 붙는 순간
사람은 다시 멈춘다.
사람을 다시 걷게 만드는 신호는
항상 이렇다.
“지금 그대로 와도 된다.”
이 말이 들리는 순간,
사람은
자기 속도를 허락받는다.
속도가 허락되면
방향은
나중에 생긴다.
그래서 회복은
앞으로 가는 일이 아니라
다시 리듬에 들어오는 일에 가깝다.
사람은
속도를 잃어서 무너지는 게 아니다.
리듬을 잃어서
삶에서 떨어진다.
그리고
리듬은
혼자서 복구되지 않는다.
반드시
외부의 박자와
다시 맞춰져야 한다.
그래서
사람은 무너질 때
중심으로 돌아가고
회복할 때는
연결로 돌아간다.
나를 연결하는 것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