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_뱅하민 라바투트
완벽하고 완전한 것은 없다. 양면성과 상보성을 수용하자.
2021년 부커상 최종 후보작으로 20세기를 바꾼 위대한 발견을 한 과학자들과 그로 인해 발생한 참혹함에 대한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에게 세상을 이해하는 방향을 제시한 벵하민 라바투트의 논픽션 소설. 작가는 실존했던 과학자들을 통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들과 우리가 삶 속에서 경험은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다루며, 사유의 한계를 위대한 발견과 부드럽고 은유적으로 연결한다.
독일의 유태인 화학자였던 프리츠 하버는 1차 세계대전으로 화약과 폭약 제조에 필요한 질소 공급에 차질이 생길 것을 대비해, 최초로 공기 중에서 질소를 채취하는 데 성공한다. 이로 인해 유럽 분쟁은 더 길어지고 다수의 사상자를 냈지만, 질소는 비료의 주요 영양소이기 때문에 이 발견으로 대기근을 몰고 올 뻔한 비료 부족 사태가 해결되어 100년 만에 전 세계 인구는 16억에서 70억 명으로 늘어났다. 한편 하버는 역사상 최초로 전쟁에서 독가스를 이용한 전투를 감독하였고, 살충제 치클론 A를 가스 형태인 치클론 B로 만들었는데, 이는 유태인인 자신의 친인척들이 나치 수용소에서 살해당하는데 이용된다. 자신의 직업적 소명만을 충실히 수행하여 많은 사상자를 냈지만, 의도치 않게 인류 증식에 이바지한 아이러니한 인물. 하버의 발견은 모든 존재의 양면성과 상보성 효과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수학의 통일, 여러 개념의 최종 모티브, 심장의 심장을 꿈꾸며 복잡한 개념을 단순화하여, 당대 최고의 수학가로 평가받던 그로텐디크는 전쟁으로 초토화되는 나라를 보고 충격을 받는다. 하버와는 달리 그로텐디크는 자신의 수학적 개념이 세상에 피해가 될까 봐 과도하게 걱정한다. 그의 관심의 대상은 수학에서 사회문제로 옮겨졌지만 수학과는 달리 사회 문제는 하나의 수식으로 해결되지 않아 결국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은둔 생활을 하다 죽는다. 복잡한 문제에 대한 단 하나의 완벽한 해답은 없다. 복잡한 문제는 여러 각도에서 다양한 차원을 심도 깊게 고려하여 상황에 맞는 시기적절한 대응책으로 해결해야 한다.
수학자 슈바르츠실트는 독일군으로 전쟁 참여 도중 최초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방정식의 정확한 해를 구하는 과정에서 특이점을 발견한다. 너무 큰 질량이 작은 면적에 집중되면 시공간은 찢어진다는 것이다. 특이점 안에서는 시간과 공간 개념이 무의미해지고, 밀도가 높아질 때 특이점은 맹점이라 우리 눈은 특이점을 보지 못하고, 보지 못하니 이해할 수도 없다. 슈바르츠실트는 특이점을 인간 정신과 연결하여 수백만명의 정신이 하나의 정신공간에 압축되어 하나의 목적에 동원되면 특이점에 비길만한 일, 블랙홀에 빠지는, 곧 자멸하는 결과에 이른다며 자국인 독일이 전쟁으로 자멸하는 과정 중 전사한다. 슈바르트실트의 특이점은 다양성이 맹목적으로 한곳에 집중되면 상식이 무너지는 위험을 경고했다.
하이젠베르크는 스승 보어와 함께 세상의 모든 것은 수학으로 설명 가능하다고 보는 고전역학을 뒤집는 양자역학을 주장한다. 미시세계에서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없으며, 실재는 관찰 행위와 별개인 무언가로 존재하지 않는다. 측정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다가 오직 측정될 때만 존재하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본질적인 성질이 없기 때문에, 파동으로 측정하면 파동이고 입자로 측정하면 입자다. 즉 전자가 나타나는 때는 오로지 전자가 측정되는 그 순간뿐이며, 입자를 실재하는 대상으로 만드는 것은 측정 행위일 뿐이다.
나는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짜증을 낼 때도 있고, 기분이 좋을 때는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이다. 만약 나를 처음 만난 사람이 짜증 내는 나를 보았다면 나는 미친년으로 평가될 것이고, 따뜻하게 행동하는 나를 보았다면 나는 좋은 사람으로 평가되었을 것이다. 나는 짜증도 내고 따뜻하기도 한 사람이지만 내 본질은 단일한 짜증 혹은 따뜻하기만 한 존재는 아니다. 나는 다만 어떤 특정 시점에 어떻게 행동하는 존재로서 평가되는 대상에 의해 정의된다. 이런 양자역학의 특성을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데 적용한다면 우리는 자기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 대해 좀 더 수용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