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열정을 누리는 사치
단순한 열정은 성공한 작가였지만 소위 애 딸린 중년의 이혼녀였던 아니 에르노가 자기보다 10살 어린 젊고 잘생긴 기혼의 러시아 외교관과 가진 짧고 격정적인 불륜 경험을 다룬 소설이다. 작가가 스스로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밝힌 바와 같이 한 남자에게 열렬히 빠진 자신의 감정의 흐름을 철저히 객관적인 시선으로 분석하여 기록하였는데 그 수위가 너무 적나라해서 읽는 동안 깜짝 놀라기도 하고 괜스레 부끄럽기도 했다.
한 번이라도 사랑에 빠져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마주하는 모든 자극이 그와 연결되고, 유치한 사랑 노래 가사에 공감하고, 별일도 아닌 일로 극심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경험하게 된다. 나는 매사에 이성적인 사람을 지향했기 때문에 문뜩 그런 스스로를 발견하고 수치심을 느끼며 그런 감정을 느꼈던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고, 그래서 괜스레 부끄러움을 느꼈던 것 같다.
인간은 대부분 자신이 열렬한 사랑을 받는 대상이 되기를 기대하지, 일생을 살면서 누군가를 이토록 열렬히 사랑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작가에게 사치란 미성숙할 때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다가, 성숙할수록 지식이란 무형 자산으로 바뀌고, 점차 타인을 향해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으로, 이런 감정을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철저히 누리고 글로 표현했다. 책을 읽는 동안 그녀의 사치품을 공유하는 기분이 들었는데 문뜩 나는 과연 죽기 전에 이런 사치를 누릴 수 있을까? 아니 이런 사치를 누릴 능력이 있을까 라는 의문도 들었다.
물론 불륜이 주는 제약이 기다림과 욕망의 근원이었고 이런 점이 이 연애를 더 열정적으로 만들어 준 면도 없지 않겠지만, 그녀의 태도에 포커스를 맞추어 본다.
열정의 대상인 존재, 불완전하지만 수용 가능한 단점을 지닌 그 대상에게 바라는 것이나 요구하는 것 없이 그를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 그를 통해 자신에게 느껴지는 것들을 충분히 느끼고, 그와의 관계에서 자신이 얻은 것과 잃은 것들을 명징하게 인식하면서 그것이 나에게 주는 가치에 집중하여 사랑의 열정만을 사치스럽게 누리는 것.
그것이 열정이 내게 주는 선물이며 이때 대상은 매개체일 뿐이다.